수치(羞恥)를 겪은 민족이 가야할 길?
청나라 기병 300에 4만 명의 조선군사가 지리멸렬하게 당한 쌍령 전투가 실제 대한반도에 사는 우리의 참 모습 인지도 모른다.
“적을 알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병법은 없는가? 자신도 모르면서 맨 입만 열면, “상대를 알면 이긴다”는 지피지기에만 관심이 있다.
자신들에 지어진 책임은 내몰레라 하고 맨날 남의 탓만 하고 신세 타령만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꼴을 보면, 이 원인이 지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미천한 조상 때부터 내려 온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왜에 밀리고, 청나라에 밀리고, 맨날 얻어터지다 그나마 지정학적 입지와 운이 좋아, 소가 뒷발질해서 우연히 지금의 번영한 대한민국을 잡아챈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이를 악물고 혁신과 도전의 긴 전략을 세우고, 새로운 미래를 조금이라도 준비해야 할 것 아닌가?
세월호가 임진왜란에 해당한다면, 메르스(MERS)는 청나라에 짓밟히는 병자호란의 꼴에 해당된다.
언제나 거듭난 대한민국으로 정신들 차리고 동서남북이 하나가 되어 광활한 만주와 시베리아를 정복하는 기개를 키울 수 있겠는가?
‘줘도 못 먹는 병신’이라는 손가락질만은 받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메르스 덕분에 이웃 국가에 우리들의 못난 모습이 만 천하에 뽀록이 다 났다.
정말, 소위 국가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이제는 솔선수범해서 준비하는 국가가 되도록 미리 준비하는 흉내라도 내야 할 것 아닌가? 그동안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국민 된 것이 부끄러워,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국적을 옮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나라에 누가 고국을 떠나는 그들의 멍든 억한 가슴을 향해 돌을 던질 자가 있느냐? 아무도 없다. 이제 하릴없는 입은 한 쪽으로 묶어 두고, 행동으로 보이자.
세상 모든 국가가 대한민국을 부러워하도록, 극동의 이스라엘이 되고, 유럽의 스위스가 되고 동남아의 싱가포르가 되어 어디 떵떵 거리고 살아 보자.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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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조선군, 청나라 300명에 당한 치욕전투 패인은?)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제대로’ 된 사람을 ‘제대로’ 뽑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람을 제대로 뽑았다면 일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사람을 제대로 뽑기란 참으로 어렵다. 피상적인 관찰이나 공식 프로필만으로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을 잘못 뽑으면 그가 지닌 직책의 고하에 따라 많은 사람이 고통받게 되고, 조직과 나라의 근간마저 흔들릴 수도 있다.
제대로 된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에 사무치게 보여주는 전례가 있다. 바로 쌍령(雙嶺)전투다. 병자호란 때 일어난 쌍령전투는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민족사에서 어쩌면 가장 치욕스러운 전투라 하겠다. 인조 14년(1636년) 12월 청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2차로 조선을 침공했다. 기병을 보유한 적의 빠른 진격 속도에 미처 달아나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에 갇혀 구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인조를 구원하기 위해 4만 명에 달하는 조선군이 북상했다. 지휘관은 경상좌병사 허완(許完)과 경상우병사 민영(閔<6810>)이었다. 조선군은 임진왜란 당시보다 훨씬 개량된 조총 1정씩을 보유하고 있었다. 1637년 1월 3일, 오늘날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일대에서 이들은 청나라군과 마주쳤다.
그런데 청나라군은 불과 기병 300여 기였다. 4만 명의 조총수와 300여 기의 기병. 언뜻 보기에 승패는 뻔한 듯했다.
“허완, 늙고 겁에 질려 눈물 흘리는 장수”
조선군은 2만씩 나누어 민영은 오른편 산등성이에, 허완은 왼편 낮은 곳에 진을 치고 목책으로 둘렀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조선 후기의 역사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이때 조선군에 지급된 화약은 2냥이라고 되어 있다. 2냥이면 대략 10발의 탄환을 발사할 수 있다. 아직 조총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되지 못한 군사들에게 많은 양의 화약을 지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군이 진을 친 뒤엔 오히려 청군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가진 조선군에 먼저 공격을 가했다. 연려실기술에선 “청군 선봉 33명이 목 방패를 들고 남산 상봉에서부터 물고기를 꿴 것처럼 줄줄이 공격해 왔다”고 묘사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있었던 청군이 낮은 곳에 있던 조선군을 내리 덮쳤던 것이다.
조선군은 몹시 당황하고 놀랐다. 조총을 제대로 쏘기 위해서는 사거리를 감안해 적들을 충분히 근접시킨 뒤에 사격을 해야 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적을 보자마자 마구 쏘아댔다. 설상가상으로 장수들 역시 경험이 없어 화약 배분을 잘하지 못해 금방 화약이 동이 나고 말았다. 선봉 33명에 의해 조선군의 화약이 모두 떨어진 것이다. 화약이 떨어져 막대기 같은 조총을 들고 우왕좌왕하는 조선 병사들 머리 위로 나머지 청나라 기병들이 뛰어올랐다.
대혼란에 빠진 조선군들은 서로 도망치기 바빴다. 이 와중에 4만 병사 중 절반이 넘는 병사가 청나라 기병들의 칼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 먼저 도망치려는 아군에 깔리고 밟혀 죽었다. 병자남한일기(丙子南漢日記)에 보면 “도망가다 계곡에 사람이 쓰러져서 쌓이면서 깔려 죽었는데 시체가 구릉처럼 쌓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압사사건(壓死事件)이다. 이 과정에서 경상좌병사 허완도 깔려 죽었다.
남급이 쓴 병자일기(丙子日記)에선 더 나아가서 “흩어진 병사들이 목책에 도달했으나 목책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면 그 뒤로 계속 시체가 쌓였고, 목책을 넘은 병사는 목책 밖이 험준해 추락해서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오른편 산등성이에 있던 경상우병군은 화약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불똥이 떨어져 대폭발이 일어났는데 장수 2명이 죽고 진영이 크게 동요되었다. 호기를 만난 청나라 기병들이 덮쳤고 이 과정에서 경상우병사 민영이 전사했다.
결과적으로 청나라 기병 300 대 조선군 4만, 즉 청나라 기병 한 명이 133명의 조선군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조선군의 패인은 단지 화약이 떨어졌다는 것만이 아니다. 쌍령의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지 못하고 밀접 대형으로 배치하는 등 전략적 안목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패닉(panic), 즉 공황(恐惶)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총체적 리더십 부재의 결과다. 허완이나 민영은 그동안 특별한 능력이 없어 변방을 돌다가 인조반정에 편승해 이른바 낙하산으로 진급한 사람들이었다. 연려실기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허완은 나이가 많고 겁에 질려서 사람을 대하면 눈물을 흘리니 사람들이 그가 반드시 패할 것을 알았다.” 무능한 인물이 중책에 임명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쌍령전투다.
조직이 성공하려면 모름지기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하는가?
– 노병천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장 – 1919ro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