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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진리의 의복?

재미있는 글이어서 공유해 봅니다.

이성의 옷과 감성의 옷으로 영국의 칸트와 프랑스의 루소를 예로 들어서 인간의 최고의 지성인 철학에 대해서 옷으로 비유한 내용이다. 또한 근대는 인본주의의 고리타분한 정장을 입었다면 현대는 개성을 위주로 한 다양한 패션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한다.

결국 철학을 우리의 몸에 걸치는 의복이라면, 절대로 모든 사람과 모든 시대를 망라하는 하나의 보편적 의복으로 통일할 수 없다는 것이 철학을 보는 바른 시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진리가 지니고 있는 하나로 통일시키는 보편적인 성격과는 길을 달리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진리야말로 이성과 감성을 넘어서면서도 모든 사람과 시대를 망라해서 변하지 않고, 영원히 하나 되게 하는 불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철학이야말로 영원하지 못한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지극히 좁은 시야에 국한하여 판단하고자 하는 속 좁은 시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서 유행처럼 변할 수밖에 다른 도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 철학 이래로 이어 나온 세상의 모든 철학을 다 모은다 해도, 결국은 진리에서 제시하는 통일된 하나의 해답을 만들지 못함은 철학이 갖고 있는 근본 한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철학이란,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에 대해 의심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변을 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철학의 한계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약한 궤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겠다.

진리의 영역에서는 의복이란, 두 가지 밖에 없다. 옛 사람의 의복과 거듭난 새 사람이 입는 옷이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옛사람의 전통과 문화와 관습에 젖은 옛 의복을 벗어 던지고, 새 사람의 은혜의 의복으로 갈아입는다.

옛 사람은 자기가 재단한 의복으로 각기 제 멋대로 옷을 만들어 입느라, 유행에 민감하게 따라 갔지만, 진리와 짝하게 된 사람들은 그 옛 의복을 훌훌 벗어 던지고, 대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손수 재단해서 만들어 입힌 거룩한 예복이기에 영원히 갈아입지 않을 하늘 천사의 날개가 된다.

하늘의 옷은 색깔도 체형도 유행도 경계도 높고 낮음도 없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영화의 옷이로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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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철학!)

철학은 옷이다. 서양 철학은 서양 사람이 입는 옷이고 동양 철학은 동양 사람이 입는 옷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치수에 맞는 옷이나.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은 없다. 칸트는 모든 사람의 평균치수를 계산하느라 무척 고심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칸트의 옷은 칸트의 몸에만 맞는 옷이 되고 말았다. 칸트는 80년 동안 세벌의 옷을 지었다.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이다. 칸트는 혹시 몸이 불어나거나 늘어나서 옷이 맞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엄격한 자기 관리를 했다. 그런데 옷은 몸에 맞추면 되는데 칸트의 패션 감각까지 계산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루소의 패션 감각은 대단했다. 오기가 생긴 칸트는 예정에 없던 외출복을 지었다. 그것이 판단력 비판이다. 칸트를 보면 영국이 보이고 루소를 보면 프랑스가 보인다. 칸트가 이성의 아버지라면 루소는 감성의 어머니다. 영국은 남성적이고 프랑스는 여성적이다. 근대는 인간성을 추구한 시대라면 현대는 개성의 시대다. 이성은 바른 생활이 몸에 벤 모범생이다. 감성은 멋대로를 추구하는 카사노바다.

칸트는 모범생이고 루소는 카사노바다. 영국은 모범생이고 프랑스는 카사노바다. 영국은 왕궁이 있고 여왕이 있다. 프랑스는 왕의 목을 자르고 왕궁을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대한민국은 5000년 역사를 지닌 나라다. 그러나 동양철학이나 서양철학을 우리 몸에 맞도록 개량한 철학자가 없다. 대학교수들은 기성복을 가져와서 학생들에게 판다.

그런데 빤짝 세일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날마다 수리 중이다. 교육이나 학교는 벌써 죽었는데 교육학자는 세월호 선장처럼 살아있다. 철학은 없는데 철학자는 넘친다. 시는 없고 시인은 넘친다. 정치가는 있는데 정치가 없다. 기업은 죽어도 사장은 풍요롭다. 정신은 실종되고 말만 무성하다. – 정행두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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