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천국문을 열게 하는 권세다!
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율법으로만 가능하다.
율법이 먼저 나의 익숙하게 길들어진 세상 탐심을 보게하고
이 탐심을 정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에 비추인 율법은 죄이지만,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율법은 진리를 비추어 보게 해서 우리로 율법 아래 놓여 있는 세상을 떠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게 하기 위함이다. 율법을 진리를 깨닫게 하는 반면교사로 삼았다는 것이다.
세상 율법이 아니면 진리를 볼 눈이 없으니, 율법이야 말로 진실로 은혜임를 깨닫게 하는것이, 바로 죽을 죄인으로만 여겼던 나를 용서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진리의 문 앞에 서기 위해서는 먼저 율법 아래 있었던 나를 용서해야 하고 이는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자기를 용서하는 것은 율법을 되돌아 보고, 깨달음으로 진리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의미한다. 용서란 세상에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출하게 하는 은혜중에 은혜다. 어쩌면 천국 복음을 세상 끝 까지 전한다는 의미는 먼저 용서 받은 자가 그 깨달음의 의미를 이웃에 전함으로서 이웃을 용서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하다.
주의 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진 자를 용서하여 주는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의 우리라는 의미도 진리를 깨달아, 먼저 세상 율법을 벗은 자, 세상을 떠나서 하늘 뜻대로 사는 자로서의 근본 용서의 의미를 깨달은 자라는 내용이 아닐까? 먼저 용서하게 되면, 다음에는 천국 진리의 문이 열리고, 용서 받는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용서란, 천국을 여는 열쇠다.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에서, 예수는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이는 하늘 문을 여는 키를 베드로가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베드로가 비로소 진리를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가 되고, 이는 또한 깨달음을 의미하는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베드로의 이런 깨달음도 베드로 스스로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하셨다.
이렇듯, 용서는 하늘 문을 좌지우지하는 열쇠를 의미한다.
천국문을 열고 싶은가? 천국문을 여는 권세를 가지고 싶은가?
그러면 먼저 회개하고, 자신을 용서하고 이웃을 용서하라.
그러면 천국이 너희 것이 될 것이라.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