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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에는 이단으로 갚으신다!

세상 종교는 어느 것 하나, 이단이 아닌 것이 없다. 

특히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모든 종교야 말로 세상 종교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세상 종교란 하늘 종교가 아닌 종교를 말하고, 하늘 종교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 하나님 자신의 종교인 하늘 종교는 하나님만 아시기에 당연히 세상 종교의 이단에 대한 시시비비는 하나님만 할 수있다. 이 진실을 망각하고 세상 종교에 대해 이단 시비를 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이단임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죄로 여기는 율법과 계명도 의와 같이 거룩하다고 한다. 우리가 율법에 의해 단정되는 죄 조차도 하나님의 목적으로 사용 되기에 거룩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율법이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선하게 사용된 하나님의 도구라면, 그 선한 도구로 들어나는 죄의 의미도 진리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에게 쓰인 선한 도구로서 거룩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율법과 계명과 죄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선한 뜻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교만 안에 묶여서 선과 악을 논하기만 하는 무지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여 진리에 대해 베일을 덮어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하물며 음부에 누어 있는 죽은 자들도 깨어나게 하는 무한한 생명력인 부활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럼으로서 진리 안에 머무는 한, 모든 것이 은혜와 사랑이기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느라 남을 판단하여 정죄하거나 이단의 시시비비를 따질 겨를이 사라지게 된다. 

사망의 눈에는 사망만 보이고, 이단의 눈에는 이단만 보인다. 육의 눈에는 더러운 세상 이단만 보이고 영의 눈에는 아름다운 천국만 보인다. 분노는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단의 정죄야 말로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숯을 만지게 되면 어쨌든 검텡이가 손에 묻게 마련이다. 

거룩한 하나님 성전인 우리가 왜, 선악의 시시비비로 허구한 날 성전을 소란하게 하고 더럽힐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님 경배하고 찬양하기도에도 천년이 하루 같은 복 받은 자들이 아니냐? 우리가 그리스도의 머리가 되었다면, 오직 하나님 쓰임 받는 진리 사업에만 정진하여 7일에 주님의 완전한 안식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면서 안식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결코 더러운 죄를 만들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우리를 율법을 통해서 깨닫게 함으로서, 거룩한 진리 되게 하여서, 영원히 하나님 벗으로 천국을 누리게 하기 위해 죄를 도구로 삼으신 것이다. 

왜곡된 죄란, 율법을 행위로 역기능하게 해서 죄의 늪에 빠진채,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여, 사랑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의 교만이 만들어 낸 어두움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에도 육체의 죽음과 함께 ,생명인 영의 탄생을 동시에 의미하듯이, 죄에도 인간이 행위로 하나님 같이 완전하게 되려는 교만으로 생성되는 어둠의 죄와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진리의 통로로 쓰임 받는 거룩한 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단에 대해서도, 죄를 분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에 눈뜬 자들이 되어서 육과 영으로 분별하는 지혜의 눈을 가져야 할 것이라. 그것은 하나님께 조용히 맡기는 것이다. 우리 안에 건축된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을 거룩하게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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