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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과 은혜로 통회함을 분별하는 분별력?

죄의식은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는 사망으로 인도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마음은 새사람의 생명으로 인도하게 한다. 

가인과 유다는 예수의 예표인 동생 아벨과 예수를 고발하여 죽이되, 

죄책감으로 인해, 마귀가 인도하는 대로 생명을 떠나 사망의 길, 인간 중심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야곱과 아브라함은 죽어야할 예수의 모형인 생명의 씨앗, 환도뼈를 부시고, 이삭을 제물로 바치고, 진정한 하나님 장손인 이스라엘과 아브라함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가인과 유다, 그리고 야곱과 아브람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인과 유다는 하늘 은혜의 법의 모형으로 주어진, 율법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율법의 노예로서 자신을 정죄한 채, 하나님 생명의 법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는 생명의 열매인 그리스도 예수를 부인하고, 선악과를 취하는 사탄의 의도를 따르는 것과 동일한 노선을 따른 것이다. 

반면에 야곱과 아브람은 비록 하나님에게 도전한 강도요, 우상을 섬기는 자녀였지만, 믿음을 통해서 하늘의 비밀인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그리스도 예수의 비밀을 나타내는 은혜와 진리와 생명 주시는 하나님 뜻을 깨닫고 순종하였기에, 율법 아래에서 죄의식으로 정죄하는 대신, 한없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은혜의 자녀로 거듭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진리의 그림자로 대신 주어진 율법은 진리와 생명의 빛이 나타날 때에는 당연히 사라지고 부인 되어져야할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율법에 집착하면서 뒤에 올 실상인 진리와 생명의 빛을 부인하고 죽이려는 사탄의 계교가 횡횡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일련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은, 율법과 은혜의 법을 분별하는 깨달음의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깨어져야할 율법이고, 무엇이 세워져야할 은혜의 법인가를 구별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이를 깨닫지 못할 때에, 율법을 우상으로 해서 생명의 진리인 법인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탄의 계교에 빠져서 마귀의 행각을 벌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현대 한국 교회가 무너져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무분별한 혼돈으로 인한 율법을 우상으로 해서, 공공연히 생명의 그리스도가 자리잡아야할 교회의 자리를 박탈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인과 유다, 그리고 변화 되지 못한 야곱과 아브람이 교회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죽여야할 율법을 섬기고, 죽여야할 십자가에 박힌 예수를 다시 살리려는 바리세적인 무분별함이 현대 교회에 횡횡하는 한, 어린 양 되신 신랑을 맞이할 아름다운 성, 새 예루살렘의 신부 단장은 늦어질 수 밖에 없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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