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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히 허리 굽혀서 절하는 자, 비굴한 자가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넘어진 자들과 겸손히 고개 숙인 자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여기서 bow down 은 비굴한 자가 아니라, 회개와 경배하기 위해 겸손히

허리를 굽혀 낮아진 사람들을 일컫는 의미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결코 비굴한 자를 일으켜 세우시지 않으신다.

본문은 성경 번역의 오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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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배우고 갑니다.^^ 훌륭한 주석입니다.” -정영호 님-

옛적에 처음 이 번역을 보고 곤혹한 적이 있어, 아니라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 킹 제임스 영한사전에 표기해 놓았는데, 오늘 아침에 페북에 올라온 내용을 보는 즉시, 이렇게 해석해서 올려놓았습니다.

[가끔 저도 그런 경우를 경험합니다. 왜 이런 뜻으로 번역했을까 하는….

지금 같은 경우엔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더욱 은혜로운 말씀이 되었어요.]  -정영호 님-

[히브리어로 ‘kaphaph’구푸려 경배하다는 뜻도 있지만 저 말씀의 경우에는 힘을 가진 악인이나 질병과 재난 등에 짓밟혀 구부러지고 비천해진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는 어린 양 같은 성도를 가리키죠.]  -강영훈 님-

핍박 받고 짓밟혀 구부러지고 비천해진 모습은 절대절망의 가난한 심령이라고 해야겠지요. 훌륭한 지적입니다. 절대절망 속에 빠져서 하나님을 갈증하고 찾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굴하다는 표현은 오해하기가 쉬운 용어이고,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우리말로는 구부러지고 비천해진 걸 압축할 말이 적당치 않아 운율에 맞추다보니 저렇게 번역한 듯합니다. 그리고 언어도 시대에 따라 변화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은 비굴이 힘 있는 자에게 비겁하게 빌붙어 아첨하는 뜻으로 사용되니까요.] -강영훈 님-

일반 성도들의 경우, 문자적인 해석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어, 은혜가 되지 않은 듯해서 좋은 예로 한 번 올려 보았습니다. 앞 뒤 문맥을 살펴보아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번역이 여러 곳에 있어서 안타까운 경우를 만납니다. 가끔은 뜻이 거꾸로 해석 되는 경우도 나타나곤 합니다. ㅎㅎㅎ

그럼에도 말이란 게 그렇고 그런 것이어서, 억지춘향 격으로 갖다 붙이면, 붙이는 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로 귀에 걸면 귀걸이로 해서 더욱 그럴듯하게 슬쩍 넘어 갈 수가 있습니다.

문장에 대한 오류뿐만 아니라, 아예 고정된 관념과 나쁜 전통에 의해서도 성경 해석의 허점이 들어나는 경우도 있었지요. 예를 들어 보면, 천동설이 극성을 피울 중세 가톨릭 시대의 일이었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 천체가 돌아간다는 주장으로 성도들을 꽉 붙들어 매고 일편단심으로 교회 권위를 내세우고 있을 때였지요.

그것도 교회 학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교황이라는 교회 지도자들의 터무니없는 소수 그룹이 하나님의 절대 권위를 표방하면서 세상을 좌지우지할 때였지요.

한 사람의 걸출한 과학자,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임종하기 전에 지동설(태양 중심으로 회전)을 주장하는 책을 발간했지만, 교회에서는 이를 금서(禁書)로 지정했고, 이를 풀기 까지는 근 300년의 긴 시간이 걸리기 까지 했답니다. 이로 인해 부루노라는 양심 있는 이태리 과학자는 화형까지 당하는 극형을 받았습니다.

어찌 이런 일들이 신의 이름으로 혹은 종교 지도자들의 입맛에 맞게 성경 말씀이 변개 되어서, 극도로 무지하게 적용해 오다가 급기야 천주교 당국에서는 최근에야 비로소 교황을 앞세워서 공식 사과를 하는 데에 이르게 된 게지요.

십자가 원정 사건은 또 어떻습니까?

이렇듯 종교라는 이름을 내세워, 백성들과 성도들을 무지의 세계 안에 감금시키는 암흑의 시대를 그토록 오래 지속 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성경이 아니라, 얼마든지 소수 집단 조직의, 조직에 의한, 조직을 위한 성경으로 변질 될 수 있다는 진실을 말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이요, 영감(靈感)으로 쓰인 말씀이라는 사실 하나는 변치 않는 진리이지만, 여전히 인간의 의도된 시도로 인해서, 아니면 관습이나 전통과 무지로 인한 오류가 변개된 성경으로 번역하고 잘못 된 주석을 교리로 해서 가르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어찌 하나님의 섭리가 하찮은 인간 소수 집단의 악에 의해서 어찌 그리 가볍게 처리되고, 아니면 말고 식의 억지춘향으로 가져 갈 수 있을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야말로 가증하기 짝이 없는 무덤에 회칠한 바리세인들에 지나지 않는 행위들이라고 하겠지요.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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