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하나님이 머무시는 축복의 장소, 다니엘의 기적을 체험하라!
애급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머무르게 된다.
출애급 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백성들은 애급의 고기를 그리워하고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에게 불평하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백성들의 불평을 전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만나와 메추리를 공급 받았고, 또 바위를 모세의 지팡이를 쳐서 바위를 깨고 물을 공급 받았다.
여기서 재미 있는 현상은, 광야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거주하기 위한 조건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인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불구해고, 왜 하나님은 이들을 위한 먹거리와 마실 물을 미리 준비를 해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또 하나의 현상은 모세인들 왜 이러한 광야의 열악한 환경을 누구 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하나님께 먼저 고해서 준비하지 못하고, 늘 이스라엘 백성의 극심한 불평이 있은 후에, 그것도 마지 못해서 하나님께 보고를 하고, 하나님의 기분을 상하면서 까지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었을까?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아마도 만나와 메추라기와 마실 물이 없어도 호화롭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광야 생활에서 생존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모세도 하나님도 백성들의 불평에 대해서 백성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백성들의 터무니 없는 주장, 즉 애급 시절의 노예생활에 대한 연민을 나타낸 것에 대해서 못마땅해 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대신에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세상을 상징하는 애급을 그리워하는 노예 근성을 온전히 끊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광야에서 십수일이면 능히 다다를 가나안 땅의 요단강을 건너는 기간이 40년으로 늘어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세상을 벗어난 황양한 광야에서 기름기 흐르는 먹거리나 맛 좋은 단물을 먹고 세상 사는 것처럼 번지르하게 사는 것 보다는 사방이 막힌 광야에서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만 바라 보고 의지하기를 원하신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능력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찾기 보다는 세상을 상징하는 애급의 부귀 영화를 갈구한 것이었다. 결국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단 두사람,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아무도 요단강 너머 약속의 땅, 가나안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된다.
광야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서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부인하고 자기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가신 길을 따라가기 위해 준비된 장소다. 그 광야에서만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눈과 귀가 있어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세상에 엎질러져 코를 사막의 모래에 박고 널부르지는 열매 매지 못하는 무화과 신세로 짤리워져서 불에 태워지는 저주를 받게 된 것이 아니었겠는가?
광야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특별 축복의 장소다.
그 광야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이 땅에 살면서도 광야를 만난 사람들처럼 살면서,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 나왔듯이 하나님의 능력과 경륜을 체험하는 기적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