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의 뿌리를 찾아서!
글 쓰는 것은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라고 한다.
어쩌면 자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 글 쓰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가야할 건지 예측하는 것이 나를 찾는 여행이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내가 어디서 왔는가? 하는 뿌리를 찾는 작업이다. 나의 뿌리는 당연히 부모가 될 것이다. 나의 온 길의 저마치 먼 끝 점에는 부모들이 버티고 서 있다.
그렇다면, 부모가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부모의 부모를 좇아서 따라 가야 할 것이고, 마지막에는 인류의 원조인 아담과 하와의 원 뿌리 조상을 만나야 하고, 그 아득한 끝 점에는 그분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신 여호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인간의 원죄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다.
왜, 우리 입니까? 나와 아담 할아버지와 무슨 관계가 있기래, 그분이 저지런 죄가 우리의 죄가 되어야 하는가고?
필자는 90 중반을 넘기신 노모가 문산의 요양 병원에 계시기에 주말을 이용해서 자유로를 다니곤 하는데, 어머님이 젊으실 때부터 가정만 아시고, 바깥에서 교우관계를 즐겨하시지 않은 관계로 늘 함께 병실을 써고 계시는 다른 어르신네들과 원만하게 지내시지 못하고 계신다.
이 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강하시고, 결백증도 있으시고, 또 이생의 자랑과 자식 자랑을 즐겨 하시는 노모에 대해 같은 방을 쓰시는 다른 분들에게 그렇게 환영 받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여러가지 어머님의 이런 저런 어려운 모습들을 접하면서, 예전 같아서면 어머님의 불평하시는 모습들이 잘 드러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접할 기회가 없어서 의례히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지만, 요양 병원에 장기간 계시는 관계로 더욱 어머님에 대한 습관이나 성격을 보게 되는 기회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필자의 복잡한 여러 성격과 평소 습관들이 어쩌면 어머님의 그것들과 닮아 있는가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필자의 성격이나 여러 습관들이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졌든지, 오랜 동안의 진화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바로 부모로 부터 이미 형성 되었던 인자가 유전적으로 내려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의 깨달음은 멀리 아담 할아버지까지 이어 내려 갔을 때에 ‘원죄’라는 이해 못 했던 억울했던 요소들이 더욱 당연한 이해로 다가 오게 된 것이다. 일단 원죄를 이해하게 되면, 성경 창세기 전반부에 나오는 다른 여러 사건들을 더 깊이 받아드리는 믿음이 생기게 되면서, 비로소 살아 있는 성경, 나와 관계있는 성경으로 인정하게 된다.
필자의 뿌리를 현재 살아 계시는 구순을 훨씬 넘기신 병상에 계시는 불평하시는 노모에게서 찾았다는 사실이 한 편으로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너무나 극적인 반전이어서, 한 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고, 오히려 엎드려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 이제 원죄의 뿌리까지 내려 갔으니, 이 참에 원죄의 뿌리였던, 선악과인 사과 나무를 넘어서 동산 중앙에 서 있는 생명나무인 예수를 더욱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랑은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말씀이 새겨진 성경을 알고, 성령과의 소통으로 오늘의 풍성하게 하도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