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리라!
삶은 참으로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다.
게으름에 대해서는 에누리 없이 대가를 치루게 한다.
그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새벽을 가르고, 나가는 사람들의 비장한 얼굴 표정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곤히 즐기고 있는 잠 마저 거부해야 하는 특별한 사연들이 있는가 보다.
이 새벽은 밤사이 놀아났던 모든 세상 가면들을 한꺼번에 벗어 버리게 하고, 치열한 생존 현장을 향해 다시 달려 가게 한다. 새벽은 모든 사람들을 일열로 세우게 하고, 절망의 제일 밑바닥에 있는 순서대로 출발선을 박차고 달려 나가게 한다.
무엇이 그들을 달콤한 잠마저 거부하고, 이 새벽을 깨우며 현장을 향해 달려 나가게 하는 것일까? 인생 살아가는 길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치열한 전투를 요구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일 것이다. 절망의 깊은 계곡 속에서, 이미 인생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정답을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새벽의 현장은 거짓이 횡횡 하지 않는 진실의 현장이다.
새벽은 낮과 밤사이 얼굴에 분탕한 가면을 벗어 버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 마력은 치열한 삶의 전투에 지친 사람들을 다시 제 자리에 가져다 놓기 때문이다. 새벽이란, 인생의 새 하루를 통해서 플레이어게인(Play again)하게 다시 리셋(Reset) 하는 것이다.
리셋 하게 하는 클럭(Clock) 입력 신호는 희망이라는 펄스(Pulse)다.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입력 펄스가 남아 있는 한, 새벽이 그렇게 낯설지 만은 않다. 새벽은 기회의 현장인지도 모른다. 낮과 밤의 치열했던 삶의 경쟁이 새벽이라는 정화기를 지나면서 말끔히 정화 된다. 세상의 온갖 찌든 오물이 새벽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청소가 된다.
오염 되었던 무거운 인생의 짐이 새벽을 지나면서 가벼워지면서 다시 하루를 가볍게 뛰게 한다. 새벽은 세상 십자가에서 죽었다 다시 살아 난 부활의 현장이다. 이제 그 부활의 그 현장에서 새벽의 기적을 만나리라.
그 희망이라는 이름의 기적은 게으름에 대해서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새벽을 깨우는 자들에 대한 부지런한 그 수고에 대하여 하나님은 에누리 하나 없는 축복을 통해서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 주시리라.
너희는 이것을 믿느냐?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대와 함께 동행하기 때문이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