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타, 임마누엘!
“쉬운 인생이란, 당신을 괴롭게 하는 쓰잘 데 없는 것들을 걷어 치우고,
당신을 기분 좋게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크리스턴 버틀러-
인생을 쉽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위에 말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막상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손해 보고 싶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 손해라는 수단을 통해서 겪어야 하는, 견딜 수 없는 인간의 모욕과 자존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은 싫든 좋든 사회 관계를 통한 존재감을 세워 가고자 한다. 이 관계를 통한 존재감이 충족 되지 않을 때에 모욕을 느끼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된다. 누구는 이 관계로 인한 상한 존재감 때문에 생명을 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누가 감히 쉬운 인생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아무도 없다. 본디 인생은 어려운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이 인간의 인생을 구별해서 특별히 어렵게 만든지도 모를 일이다. 신이 만능 이라면 인간은 무능 보다 조금 낫게 만들었을 것이다.
차라리 무능하게 만들지 않고, 조금 낫게 만든 게, 인생이 어렵게 설계 된 근본 원인이 되었다면, 왜 인간이 모순적 존재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만능을 향한 인간의 몸부림이 더욱 인생을 어렵고 처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이루지 못하고, 영원히 채워지지 못하는 무능에 가까운 존재가 바로 인간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신의 경지에 들지 못 할 것을 인식하고, 자기 인생에 대한 주제 파악이라도 한다면, 아마도 나름대로는 쉬운 인생을 틈틈히 즐길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채워지지 않는 운명으로 인해서 슬퍼하고 허무한 마음을 풀 길이 없고, 채워지지 않는 이 공간은 욕심으로 변해서 사람을 괴롭게 한다.
만약 인간에게 신의 기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인간의 만능을 향한 바람이 사라지고, 욕심도 사라지고, 소위 쉬운 인생을 누리며 살 수 있었을까? 무능하게 태어나지 않은 이상, 인간의 존재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에 따른 모욕과 자존심도 또한 정제 되지 않은 욕심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는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끊기는 커녕, 남의 생명을 도륙 낼 것이리라.
결국 인간에게는 어려운 인생을 감수한다 하드라도, 신은 존재하게 해야 한다.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필수라고 한다면, 인간 스스로가 다다를 수 없는 신의 만능의 경지에 도전하느니, 차라리 신에게 그 다다를 수 없는 빈 공간을 내어 주면 어떨까?
“신이여 우리를 돌보사, 어서 오소서. 우리를 채우시고 변화하게 하소서!
마라나타! 임마누엘!”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