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자유는 절대 구속으로 부터!
누구나의 공통 된 로망은 ‘자유’가 아닐까?
그래서 인지, 세월을 넘나들며 개나 소나 모두 다 자유라는
단어를 입에 쉽게 올린다. 과연 그럴까?
역사적인 사례를 보더라도, 서구에서 부터, 자유에 대한 투쟁을 시작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정도로 그들에게는 자유란 영원히 손에 잡을 수 없는 아오라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자유의 무게를 죽음의 그것과 동등하게 여길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겠는가? ㅎㅎㅎ
자유를 정의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구속으로 부터의 자유?
무지로 부터의 자유?
불평등으로 부터의 자유?
억압으로 부터의 자유?
사회 체제로 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 부터의 자유?
기아와 가난과 결핍으로 부터의 자유?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
이렇게, 자유란 천의 얼굴을 가진 기묘한 존재가 아니든가?
어쨌든, 자유란 하늘에서 그저 떨어지는 떡은 아니다.
자유란 그 존재 자체가 기존의 체제의 틀을 깨고 나가는 것이기에, 자유를 구가하면 할수록 기존의 세력으로 부터 저항을 받을 수 밖에 달리 뾰족한 도리가 없다. 자유란 마치 세상 파도를 역으로 거슬러 항해하는 배와 같고, 중력을 거슬러 창공을 차고 날아 오르는 독수리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란 투쟁하여 쟁취하는 대상이다.
또한 자유란 구속을 전제로하기 때문에 구속이 없는 자유란 없다.
그만큼 인간이 자유를 스스로 누린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스스로가 자유를 갈구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란 영원히 자유를 누리지 못할 불안한 존재란 거다.
그래서 자유가 없는 인간 세계를 고해의 세계라고 부르지 않는가? 우리가 자유를 갈구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고난의 바다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헤쳐나가기 위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입장에서 자유란 바람 앞에 놓인 위태로운 등잔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자유란 절대 구속으로 부터 나온다.
절대 자유란 절대 구속에서 나온다는 가정이 어느 면에서는 영적인 해석을 곁들여야만 할 것 같다. 우리를 구속하는 자가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가 아닌, 절대 권위를 가진 존재라면, 이를 멋지게 해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차피 인간 스스로는 자유를 얻을 수 없고, 또한 구속 안에서 참 자유가 이루어진다면, 그 참다운 구속을 절대 구속으로 정의할 수 있고, 절대 구속 안에서 우리는 절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결론을 가져 본다.
인간적인 사랑이 사랑이 아니듯이, 인간이 원하는 인간적인 자유도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듯이, 하나님에게 구속된 자유 만이 절대 구속에 매인 절대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를 우리를 구속하신 구원자라고 부른다.
그는 그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절대 구속자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그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 주는 영의 존재로 된다. 여기서 생명이란 영원히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신령한 진리의 영을 의미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요한 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말씀 입니다.
♡ 안응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