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다 함께, 운명 교향곡을 연주하자!
과연 운명이란 있는 것인가?
아침부터 무슨 생뚱 맞은 운명의 오케스트링을 하고 있는가?
사람의 운명은 태어난 해와 달로 결정나고, 궁합은 태어난 날로 서로 합이 결정 된다고 한다. 아마 주역에서 이르는 말인 것 같다.
나폴레옹은 어땠을까? 마지만 워터루의 패배는 과연 그의 운명적 서곡 이었을까? 음과 양의 이치를 따져서 우주의 기운이 일년 주기로 정한 패턴 대로 운명이 결정 난다고 한다면, 과연 이를 주관하는 자연의 이치는 누가 정한 것일까?
일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자연히 정해지는 것처럼, 하루의 밀물과 설물이 서로 밀고 당기는 것처럼, 지구는 태양과 달의 적절한 공전과 자전을 통하여 생명의 색깔이 정해진다는 논리야 말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웃지 못 할 희극 같이 듣기겠지만, 수천 수 백년동안 이어 오는 사람들의 팔자는 통계적으로 매우 정확하다는 결론에는 별 의의를 제공할 여지가 없이, 이것을 미신이라 부르든 말든 간에, 우리네 생활속에서 그 힘을 상당히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만은 없다.
만에 하나라도, 사람의 운명이 통계적으로 자연의 변화와 일치하여 결정된다면, 과연 사회라는 단위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을 위시한 윤리와 규범으로 작동되는 수 많은 수단들이 어쩌면 자연과 사람의 운명을 거역하는 잘못 된 장치들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운명이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지고 가야하는 자신들의 과업이요 하늘의 뜻이요, 사명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지어 놓은 무지한 틀로서 한 인간의 자연스레 나아가야 할 물길을 인위적으로 막아 놓고, 그 물꼬를 다른 곳으로 튼다면, 그것은 자연의 이치를 범하는 것으로 지구의 환경 오염 만큼, 개개의 인간을 황폐화 시키는 결과를 야기 시킬 것이 아니겠는가?
필자의 의도는 인류 사회의 법을 지키지 말고,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운명이 앞서는가? 아니면 사회법이 앞서는가? 하는 단순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입장에서는 섯불리 즉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사회법이 운명을 앞선다고 감히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 하나 만은 분명하다.
그러면 필자는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만약 운명이 있다는 사회적 동의가 있다는 가정하에, 모든 사회 법과 규범을 무시한 채, 사람의 생긴 모양과 모습대로, 운명에 따라서 살아 간다고 해서 과연 사회가 무법 질서 속에서 망하기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분명한 뜻이 되겠다.
필자의 의견대로라면, ‘절대로 사회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오히려 조화로움 속에서 건전한 사회가 재탄생 되리라는 기대를 감히 피력해 본다.
오히려 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잡음은 인간 운명의 정한 길을 인위적으로 사회 제약의 틀 안에 집어 넣어서 똑 같은 붕어빵을 찍어내기를 강제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사회가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온갖 제약이야 말로 인간 상실의 터무니 없는 수단은 아닌지?
이제 운명이라는 엄숙한 선언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인간 권리 장전의 내용을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 응재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