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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으로 예수 믿으세요!

비움이 있을 때, 채워짐이 있다고 한다. 

채우기 위해 비움이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 많이 채우기 위해 비우는 사나운 꼴이 되는 것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부류에 속해서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비우고 채우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고, 자기의 소리가 대포가 되어 온 천하를 자랑하고 홍보하느라 꽝꽝 거리고 있다. 

비움은 자기를 비우는 것이고, 채움도 비움의 지속적인 전제 아래 깨달음으로 채우는 것이리라. 그 깨달으미란, 비움을 정당화 하는 자기 성찰이 됨으로 비움을 채운다는 의미는 비움이 더욱 공고히 되어 비움의 일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비움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비움의 일상 용어를 우리는 겸손이라고 한다. 

겸손은 교만에 반대 되는 의미다. 

자기를 비우는 것은 자기를 비우는 것이고, 자기를 낮추어 처신하게 하는 것이고 이것이 겸손의 의미다. 교만은 이와 반대로 자기로 더 채우기 위해 비움을 핑계로 사용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비움이라는 단어를 입에 오르 내리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후자에 속하는 교만의 사람들이 많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채움이라는 방석 위에 틀고 앉아서는 비움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를 말하는 사람이나, 듣고 따르는 모든 무리들은 진실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겠다.

‘비움이란 겸손’이라고 하는 의미는, 비움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입에 올리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로는 인간 스스로는 “인간은 절대로 스스로 비울 수 없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원죄의 존재로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에 불과 하다.”

우선 이를 깨닫는 것이 선행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고, 진리에 대한 목마름, 심령이 가난해지는 절차가 시작 되는 것이다. 이것 자체도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 있는 자가 어찌 빛을 깨달을 수가 있는가? 빛으로 인도 받을 때에 비로소 자신이 어둠이었다는 진실을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빛으로 인도 받으니, 모든 깨달음이 빛으로 인함인 것을 알게 되고, 깨달음의 눈이 비로소 뜨이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은 빛이라는 순전한 은혜로 되어짐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비움의 작업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닌, 은혜로 되는 것이라는 진실을 깨닫는 것이고, 이 진실이 우리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든다. 우리가 빛이라는 진리의 실체를 만날 때에 비로소 우리 존재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고, 겸손히 무릎을 꿇을 수 있다. 이를 우리는 회개라고 부른다. 

회개란 천국으로 들어 가는 입문이다.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는 경고성 말씀은 기실은 “진리를 만나면, 회개한다”는 축복의 역설적 메시지라 하겠다. 

진리를 만나면, 진리의 은혜 속에서 회개하고, 거대하고 거룩한 진리의 능력 앞에서 낮아지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된다. 이것이 비움의 참뜻이다. 비움은 회개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회개가 있으면, 겸손으로 이어지고, 이어서 마지막에는 진리의 깨달음으로 채워진다. 이것이 비움의 참 뜻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인용하면, 비움을 성령으로, 즉 하나님의 진리의 영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표현이 예수가 되었듯이, 우리도 비워진 그릇에 성령으로 채워지면, 인성과 신성으로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표현 되게 된다.

비움을 실천한 당신은 예수님의 표현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믿으면 예수 진리로 표현 되는 우리 모두가 된답니다. 

ㅎㅎㅎ

♡ 응재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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