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되는 자!
흔히 인생의 행복이란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한다.
이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종속되는 우리 약한 마음에 따라서
우리의 행복이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처한 상황과 환경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된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의 마음은 환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 환경을 관조할 수 있는
주인의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의미와 매우 부합하는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기를 바꾸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세상의 눈을 가지고 접근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세상의 변화에 물들 수 밖에 없다. 주인이 되려다, 오히려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 차라리 내가 변하고 말지”라는 자조의 수동적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여기에서의 뜻은 능동적으로 해석해서, 세상을 관조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이 되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이란, 나라는 존재를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표현(Expression)이라 하겠다. 마치 우리를 누구를 구별할 때, 얼굴을 떠 올리거나, 이름을 불러서 구별하는 것 같이, 마음은 사람을 구별하게 하는 특징으로 구성 되어 있다. 하나님의 표현을 예수님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신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렁님, 삼위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와 같이 하나님과 정확히 같은 마음을 가지고 행한다면, 비록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가지고 다르게 불리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심으로 하나님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란 이와 같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똑 같이 몸 된 하나님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수족이 되어 정확하게 행한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가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예수님이 몸된 교회의 지체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믿는 믿음을 가진다는 의미는 전적으로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고, 이를 실행하는 것은 교회의 지체로서, 예수님의 뜻과 하나로 동화 되어 움직인다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의 표현으로서 동시에 교회의 표현이 되어야 비로소 크리스챤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는 예수님의 자녀로서,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성도들의 위가 삼위 안에 녹아져 있다. 성도들의 관점에서는 사위일체가 바른 표현이지만, 예수님과 동일하게 여겨져서 삼위일체로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함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로마서 8:14>”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표현이 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교회의 지체가 되고, 온전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세상과 우주에 일어나는 모든 환경과 상황이 ‘하나님의 섭리(The Providence)’에 의해 움직여 진다고 믿는 마음을 붙잡을 때에, 상황과 환경을 관조하는 진정한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간절한 바람이 우리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아들됨의 무한한 축복 가운데서 살게 하는 것을 마음판에 새겨야 한다.
♡ 응재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