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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사랑?

– 김준희 님 그림 –

[나만이 잘하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도 사람들은 내가 못하는 것만 지적했고 거기에 집중하다 보니 내 장점을 잃어버렸다. 재활하는 동안 나의 우승 장면이 담긴 영상들을 다시 보면서 내가 잘하는 것들에 집중한 것이 메이저 대회 포함 2주 연속 우승의 비결이다. -신지애

게임에서의 승부는 강점…에 의해 갈립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약점 보완이 아닌, 강점 때문에 위대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점보완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나의 강점을 찾고, 강점을 사랑하고, 강점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과 성공을 함께

불러오게 되는 비결입니다. 잘못함을 보완할 것이 아닌 잘하는 것으로 승부하십시오.]

– 곽봉호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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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무슨 승부가 있습니까마는 흔히 인생을 게임에도 비유를 하곤 하지요.

만약 인생을 승패를 가지고 논한다고 하면, 강점은 더 키우고,

약점은 보완하는 양면 작전으로 나가야겠지요.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강점은 그만하면 되었으니, 약점만 보완하면 밸런스 잡힌 멋있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늘 약점에 초점을 맞추고 집착하게 됩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 기본적인 원리가 적용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흔히 부부 사이에도 이 원리를 적용해 보면, 부부 관계의 승패도 확연히 가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가정 살림 꾸리는 데는 젬병인 부인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반면에 사회 활동은 탁월한 수단을 발휘한다고 하자. 이 때 부인을 사랑하는 나머지, 남편이 부인의 약점인 가정 살림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애쓰는 나머지, 이러쿵저러쿵, 이런 저런 주문을 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아마 참담한 실패로 끝날 것이 분명하다.

그 부인은 남편을 매일 잔소리나 하고 자신을 학대하고 미워하는 원수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완성되지 못한, 신이 아닌 부족한 인간의 참 모습을 잘 표현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인간은 나름대로는 조화로운,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릴 수는 있고, 어느 정도는 이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조화의 외형이 그럴듯하게 꾸며진다고 할지라도 결코 인간의 커진 욕망과 욕심을 온전히 다 채울 만큼, 만족한 결과에는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사랑이 오해로 얼룩지고, 상처로 얼룩져서, 부부 관계가 끊어지고, 더욱이 철천지원수로 갈라서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는 것이 흔히 현대 드라마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 집단이 형성된 고래로 부터 지금까지 나타나는 인간 실패 역사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참사랑이란, 단순히 옳고 그름, 강하고 약하고의 팩트의 사건을 넘어서, 눈에 콩깍지를 씌운 채로, 무조건적인 결단과 행위가 요구되는 것은 아닌가 여겨 본다.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인 선악과(善惡果)야 말로 눈을 부릅뜨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남의 강점과 약점을 분별하게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욕심을 유발하게 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연스러운 유추를 해 본다.

이에 반해서, 무조건적인 사랑, 즉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하해와 같은 사랑인 긍휼의 마음이야 말로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생명나무가 아닐까? 그래서 인간으로서 이러한 영원한 하나님의 긍휼을 흉내 내어, 생명나무 과일을 먹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부인(自己否認)을 통한, 선악과 행위를 버리는 콩깍지 사랑을 베풀어야만 하지 않을까?

인간의 본질을 꿔 뚫지 못하고 행하는 모든 행위야 말로, 결국 생명의 참 사랑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이를 두고 인간적으로는 무지(無知)하고 주제(主題)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성경에서는 “자기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안에 있는 티를 보고 나무라고 판단 한다”고 비유하여 책망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면전에 서게 되면, 영적으로는 눈을 베일로 가린, 여전히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하는 간난 아이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 죄인(罪人)일 따름이다. 그러니, 우리가 감히 누구를 판단하고, 가르친다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은 부족하기에 판단의 대상이 아닌, 용서하고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 응재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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