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에 살으리라!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고 한다.
어쩌면 이 희망이란,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은 비밀을 먹고 살고 있는 겪이다.
비밀이 없는 세상?
상상도 못하는 메마르고 터무니 없는 일상이다.
성경의 생명도 비밀에서 나온다. 그래서 성경을 대할 때 마다, 늘 새롭고 신선하다. 세상의 그 무엇이 성경과 비교가 되겠는가? 그것은 가장 비밀을 많이 포함하고 때문이 아니겠는가?
땅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 땅 끝이라고 불리는 하늘의 비밀이야 말로 가장 크고 광대한 비밀이리라. 그 하늘의 비밀을 간직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성경이다. 그 땅 끝에서 들려 오는 하나님의 하늘의 소리가 곧 성경의 내용인 복음이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서 들려 오는 비밀인 복음은 생명을 타고 전해 온다. 그래서 대할 때 마다 늘 신선하고 지루하거나 지치지 않는다. 오늘도 이 생명의 옹달샘을 찾아 비밀의 정원을 헤메고 있다.
이 신성한 아침에 갑작스레, 신비한 비밀을 이야기 들먹이는 이유는 바로 요즘에 와서 열창하고 있는 “청산에 살으리라”에 익숙해지면 질수록 느끼는 깨달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람은 느낌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수 많은 애창하는 가곡 중에 유독 평생 동안 마음에 머물면서도 제대로 독창을 부르지 못한 곡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청산에 살으리라”는 곡이었다.
이 곡의 작곡자가 굳이 한양대학교어 설립자인 김연준씨이기 때문에, 필자가 한양대학교를 나오고 평생을 보낸 고향의 빚진 마음에서가 아니라, 우연한 자리에서라도 이 곡을 대하는 날에는 깊은 무언가 모르게 깊은 곳으로 부터 끌어 오르는 감동이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필자도 인생 가을의 황혼기에 들어 서서인가?
발걸음과 함께 슬로우의 성숙된 인생을 즐기는 이때에 다시 이 신비의 원천으로 다가가 슬며시 손을 내민 것이 아닌가? 그렇게 바삐 달리며 사느라, 주위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대하며 달렸으니, 이 어찌 인생에서 낙마하지 않고서야 제대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으랴?
그런 의미에서 필자에게는 나이듬이란 큰 축복 중에 축복인 셈이다.
이제 지금 이 시각 이 곳에서 조용히 이웃을 바라본다. 그 이웃 중에 하나가 이 청산에 살으리라는 노래다. 이 노래가 특별히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또 다시 재회하게 된 것도 바로 곳곳에 깔아 놓은 지뢰와 같은 비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절대로 억한 감정이나, 막된 마음으로 이 노래를 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지금 까지 필자는 이 노래를 건성으로 대했다. 이성이 고려되지 않은 감성으로만 내 기분에 따라서만 막 대한 결과, 한 번도 제대로 청산에 사는 비밀을 갈파하지 못한셈이었다.
세상이 집중하는 조용한 이른 아침에, 이제는 그 비밀을 속삭이듯 말하여 주려는 듯이 살며시 옷깃을 풀고, 그 비밀스러웠던 가슴을 열어 준다. 음절 하나 하나에 피와 땀이 묻어 있고 정성과 희생이 스려 있다. 나는 비로소 오랜 역사를 뒤로한 채, 마침내 청산과 사랑에 빠져서 살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