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리가 무엇이관대?
자연이 이렇게 완벽하게 하늘을 이룰 수 있을까?라고 할 정도로 파란 하늘을 자랑하고 있다.
좋은 계절을 지나서 미치도록 빠질 수 밖에 없는 감동의 계절이 아닌가? 생각 한다. 우리가 무엇이관대, 이토록, 뼈가 쓰리도록 아름다운 파아란 캔버스에 노오란 은행 단풍을 흩어 뿌려 놓았을까? 무엇이 우리들의 아픈 마음 위로하느라, 이리도 맑고 고운 공간을 꾸며 놓으시는가?
어제는 누구에게나 열린 주일 공간이었다.
몸도 영혼도 다 열어 놓도록, 배려 받은 하나님의 날에 하나님도 동참하시려는 듯 기쁨으로 아름다운 가을의 극치를 선물하셨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그림으로 시도하고픈 자는 오늘 이 자리, 이 순간에 우리와 함께 동참하라. 청운동 높은 북악의 기상 아래 경복의 테니스 장에 와서 우리와 함께 놀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빈부 격차 없이 달릴 수 있는 축복의 공간으로 와라.
우리 민족은 고래로 부터, 체면에 목숨을 건다.
이 무슨 해괴한 민족 철학이란 말인가? 우리 민족의 높은 기상이 어찌 체면 따위로 영육이 쪼들려 지다니, 이게 어찌 배달의 민족의 홍익 정신을 지닌 민족이란 말이더냐? 이제 모든 것, 구속하는 것 털어 놓고,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자연의 은혜의 공간으로 뛰어 나가야 한다.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육체가 오지만, 또한 건강한 육체가 건강한 정신을 이끈다. 이것이 창조 정신의 근본 질서인 조화의 묘미다. 너와 내가 구별 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서로 협력하여, 서로 상승작용을 이끌어 우주의 에너지를 충만하게 채우는 것이 곧 살아 있는 생명의 근본 흐름이 된다.
그래서 우주의 아름다운 생명 작용을 통해서,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손길을 경험하는 행운을 가진다. 체면에 찌들려서 자연을 멀리하는 자는 이러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만날 수 없다.
사람이여, 사람이여, 어차피 사라질 얼굴과 육체, 쪼잔하게 이제 그만 보듬고, 건강한 자연 으로 나아 오라. 그리고 주어진 은혜를 만끽하면서 체면을 버리고, 영육 간에 강건하게 되기를 애쓰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