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표는 자신을 우리의 영의 그릇 안에 담아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하고,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과 연합해서 하나 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되고, 하나님을 표현한다고 할 때, 누구에게 표현하기 위해 하나가 되는 것인가? 과연 하나님의 표현을 나타낼 대상이 있기라도 한건가? 사실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나타내고 자랑 할 만한 대상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되는 영광은 하나님 스스로 받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스스로 영광을 받는 다는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할까?
한 마디로 표현해서, ‘회복’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창세기에서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 하신 뒤에 6일 뒤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만족하시며, 다음 날 7일 째 부터는 하나님은 안식을 취하셨다고 했다.
그 안식이라는 의미는 신성의 의미로 사용되었기에 인성의 글로 제대로 해석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솔직한 심정이다. 인간적으로는 안식이란, 말그대로 쉬는 것이다. 좀 더 강조하는 의미에서는 푹 쉬는 것 정도가 된다.
천국의 상태를 의와 희락과 평강이 충만한 상태를 안식이라 하듯이, 안식이란 천국의 상태라고 해도 의의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어쨌든,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고, 완성된 안식의 상태에서, 사람이 지은 죄로 인해서 완전한 안식이 깨어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깨어진 채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하나님 자신을 표현한다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목적은, 창조했을 때의 ‘좋았더라’ 하신 최초의 상태로 회복 되어, 완전한 재 안식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최초의 에덴으로의 회복이다.
안식이란 하나님의 관점으로서는 이는 창조의 완성이고, 더 이상 분열과 반역이 없는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스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으로의 보좌를 세우신 것이다.
이 모든 안식의 완성이 사람으로 시작되었고, 또 완결된다는 사실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능히 가늠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 사람은 하나님과 불과분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운명적으로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사람은 이렇게 소중하기에 환란도 많다. 하늘에서 이루어 진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한 과정의 모든 풍파를 오직 사람 만이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증한 일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래서 시련은 사람에게만 부여된 특권인지도 모른다. 선택 되었기에 감당해야 하는 고난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