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천국의 열쇠는 존재하는 것인가?
여기에 성직자라는 이름의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미래를 지향하는 희망의 사람이 있고 또 다는 한 사람은 현재에 매몰되어 미래의 희망은 없지만 죽어서 구원을 확신하는 소망이 있는 사람이 있다.
결국 성직자로서 희망을 이룬 사람은 성공과 출세의 가도를 달려가서 성직자의 로망인 로마의 바티칸 궁전에 발을 담그지만 구원의 소망으로 현재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성직자는 중국의 이름 없는 초라한 장소에서 30년 넘게 일생을 바치게 되었다.
누가 인생을 선택이라했는가?
육과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희망과 영과 하나님이 지배하는 하늘이라는 소망 가운데 과연 지금 당신이 선택하고 온 몸과 마음과 힘을 쏟아서 따르고자 하는 것이 세상의 희망입니까 아니면 하늘의 소망입니까, 세상의 안락함입니까 하늘로 가는 십자가입니까?
우리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눈에 보이는 세상 미래의 희망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 소망 십자가의 갈림길에 서서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 받고 있다. 세상 희망인가, 하늘 소망인가?
다만, 그 선택이 자유믜지로 스스로 정한 선택인가? 아니면 태어나기 전에 이미 확정된 선택인가?는 아무도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전적으로 누구는 희망으로 또 누구는 소망으로 살도록 설계되어진 것은 아닌가?
성경 66권도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다. 구약과 신약으로 서로 나누어져서 구약의 창세기로 성경을 시작해서 신약의 요한계시록으로 성경을 끝맺음 한다. 그야말로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욥기의 말씀대로 율법과 죽음에서 은혜와 부활과 영생으로의 대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세상 미래의 희망을 쫓는 성직자는 구약을 대표하는 육의 자식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현재에 함몰 되어 있는 세상 희망이 아닌 하늘 소망을 쫓는 성직자는 신약을 상징하는 영의 자식으로 분별된다.
결국, 천국의 열쇠는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성직자를 통해서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는 성경의 특징을 잘 설명하고자 했고, 한 사람은 율법주의자의 일생을 보여주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십자가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일생을 예표했다고 하겠다.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선악과와 생명과의 의미를 만날 수 있고, 이는 우리 각자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나와 또 다른 나’의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천국의 열쇠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천국의 열쇠,
이 아침을 깨운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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