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오늘따라 어찌 하늘이 이렇게 깊고 푸른가?
어제는 산을 내려 오는 길에, 도토리 한 알이 온 우주의 묘미를 알려 주더니, 오늘은 푸른 하늘, 깊은 바다로 인도하는구나. 가을은 어느 사이 우리 마음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각 까지도 사로 잡고 놓으려 하지 않는구나. 가을은 욕심장이 여인의 파아란 심뽀 인가 보다.
오늘은 주차장에 앉아서 잠시, 해야할 일들을 손꼽아 봤다. 무엇부터 먼저 수행해야하고, 수행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하는가? 에 대한 사소한 일들이었다. 당연히 중요도에 따라서 순서도 정해야 하겠지만, 상식에 어긋나게 대개는 중요한 일 일 수록 뒤로 순서가 밀리는 경향을 알게 된다.
아마도 중요한 일 일수록, 약간의 워밍 업이 필요하다는 신중한 생각이겠지. 그러나 그러다 보면 사소한, 하지 않아도 될 일에 거의 하루의 시간을 다 쓰 버리고, 결국 중요한 일은 발도 들여 놓기 전에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러니, 수확이 형편 없지 않겠는가?
대어는 다 빠져 나가고, 송사리, 잔챙이, 잡초만 무성하게 황야를 채우고 있는 꼴이다. 옛 관습의 틀을 깨지 못한 가난의 영이 늘 생각과 육신의 지경을 제한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곤 한다.
수 많은 위대한 현인들이, 우리와 똑 같은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 우리의 존경과 인생의 롤 모델로 남아 있는 것은, 지경을 제한하는 인생의 한심한 틀을 깨고, 담대히 뛰쳐 나온 연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허긴 무소유로, 무위자연 하면서 산 속에서 나홀로 자연을 벗하고 살아야 할 사람이 아직도 속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 한 채, 이렇게 숨가쁘게 빌딩과 인간의 정글 속에서 지내야 하니, 무슨 뾰족한 대책이나, 묘안이 있겠는가?
허긴 입으로만 자연, 자연, 했지, 도무지 자연을 아는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자연으로 들어가서 허구한 날 라면으로 땜방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적어도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도 도시에서도 길이 없다.
그러니 이렇게 무거운 엉덩이를 짓누르면서 떡방아 짓고 있느라, 아까운 우주의 시공간만 축내고 있는 것 아닌가. 몰라서 행하지 못하고, 알아도 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무위도식 하는 사이, 어디에서 그 해답을 ㅡ찾을 수 있겠는가? 없다. 이 세상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필자가 처리할 마땅한 일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이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라고 고백한 다윗의 참담한 심정으로 시편121 편으로 돌아 가서 어떻게 결론을 내리는가 보자.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으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