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얼굴이 얼굴인가?

이른 아침, 불광동 역에서 6호선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벤치에 않은 한 여인이 얼굴 눈섭을 그리느라, 거울 삼매에 빠져 들어 있다. 그 집중력은 온 우주를 흡입하고도 남을 집중력을 보이고 있고, 거의 살기에 가까운 눈살미를 하면서 거울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오, 여인이여, 여인이여! 얼굴이 얼굴인가?”

얼굴의 어원을 보면, ‘얼을 담고 있는 그릇’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영혼과 정신과 내면을 의미하는 ‘얼’과 골짜기나 계곡을 의미하는 ‘골’, 형, 그릇과 몸 ‘체’를 의미하는 ‘굴’로 나타난다.

15 C 때에는 얼굴이 얼골이 어원이 되어, ‘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를 의미했다가, 17 C에 와서는 얼굴이 안면이나, 낯으로 축소 해석 되었다고 한다. 굴은 골짜기를 의미하는 골에서, 동굴의 의미인 굴로 변화 되었다고도 한다. 동굴의 어미가 쓰인 것은 영혼이 들어 가고 나가는 통로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요.

원래는 영과 육이 그 사람의 기질과 특성을 나타내면서, 구별된 자아를 대변하는 간판으로 쓰이다가, 점차로 육체 보다는 얼굴로 그 역할이 변해졌다고 볼 수 있다. 언굴에는 70가지의 각종 근육으로 이루어 졌고, 이를 조합해서 7000 가지의 표정을 지어 내면서, 인간의 골상과 심상을 통해, 희로애락을 표현한다고 한다. 

여인의 일생과 거울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과 분의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여인의 모든 인생을 결정해 줄 것이 얼굴이라는 강박싀식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여인들은 얼굴로 인생의 승부수를 띄울 각오로 살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이 본인의 가치를 전적으로 결정하는 참 자신의 근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젊어서도 그렇지만, 늙어서 몸이 망가지고, 속 병이 극에 달해도, 오로지 얼굴 가꾸기에 몰입하는데만 전력을 다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안타깝게 한다. 어쩌면, 얼굴의 어원이 뜻하는 원래 의미에 충실하게 따르는지도 모른다. 얼굴이 아름다운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는 그 의미에 목숨을 거는 착한 학습자는 아닌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얼굴’의 단어를 인터넷으로 뒤져 보면, 거의가 성형과 관련된 업종이 주류를 차지한다. 즉, 그릇을 인위적으로라도 뜯어 고쳐서 사람의 팔자를 바꿔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름다운 영혼을 담고자 하는 열망이 지나쳐서 성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시각을 교묘히 속여서라도 자신의 허영된 운명을 이루고자 하기 때문이리라. 

“자연으로 돌아 가자”는 루소의 주장대로, 얼굴이 낮짝이나 안면의 소극적인 의미에서, 본래의 광역적인 의미인, 아름다운 영혼을 담고 있는, 향기나는 육체의 그릇으로 돌아 가야 한다. 우리들의 얼굴에는 외형적인 미 뿐만 아니라, 내면의 잘 숙성된 의지와 지혜를 담뿍 담고 있는, 전형적인 한국 여인의 풍미와 풍류가 엿 보이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로 돌아 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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