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할 수 밖에 없는 원죄에 속한 인간 군상!
“가끔은 내가 “Okay!”라고 했을 때에, 내 손을 잡고, 나의 눈을 지긋이 응시하면서, “당신은 Okay가 아니지요” 하면서 내 손에 만 달러를 쥐어 주는 사람을 원할 때가 있다.”
참 재미나는 코멘트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코메디로 여기고 웃고 지나가기에는 무언가 딱히 집히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 보게 하는 대목이다. 작금의 시대가 굳이 물질 문명이니, 배금 주의에 물들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뜻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황금, 소금, 현금이라고 해서 인간에게 중요한 3 금을 들먹이고자 하는 것도 또한 아니다.
다만,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예를 들어서, 가까운 부모 형제나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경험하는 것 중에, 부득이하게 급전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대개는 식사를 대접하던가, 아니면 값비싼 물질적인 보상으로는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데도 불구하지만, 막상 필요한 금전적으로는 선뜻 도와 주기를 꺼려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막상 곤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위로는 커녕, 더 약만 오르는 곤란한 처지에 처하게 된다. 왜 그럴까? 현금으로 도와 주는 것이 왜 그렇게 힘이 들까? 그렇게 가까운 부모 형제들 사이도 이렇다면, 하물며 친지나 친구들 사이에는 오죽 더 하겠는가?
수 십마원 짜리, 비싼 저녁은 사 줘도 십만원 현금을 주는 것을 꺼려하는 인간 심리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왜, 현금을 주면, 어디 덧이라도 난다는 것인가? 목이 마른 사람에게 생수를 줘야지, 필요한 물 대신 비싼 위스키나 소금을 탄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현금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근본 인간이 가지는 심술 때문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 지라도 속 시원한 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겠지?
누군가가 이야기 했듯이,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된다는 고약한 인간 습성에 젖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는 순전히 인간이 가진 원죄에서 야기되는 결과라고 해석을 해도 대충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이렇듯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불쌍한 존재랍니다. 그러니 하나님 사랑 없는 이 세상을 어찌 생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하나님 외에는 부모 형제를 비롯해서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은 한 치도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깜깜한 정글의 세계와 같습니다.
이 정글을 현금으로만 살겠다는 어리석고 무지한 인긴 군상들이야 말로 참 생명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현금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는 부류들이고, 우리 모두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교만의 탈을 쓴 원죄의 군상들이 아니겠는가?
하나님 보다 현금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 이를 회개하지 못 하는 그들의 말로는 영생 보다 영불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을 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