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름의 옛모습, 거듭나지 못한 인생!
아담과 이브가 처음 죄를 지었을 때, 발가벗음에 대한 부끄러운 감정을 처음으로 가졌었다. 죄가 자리 잡기 이전의 인간의 감정에는 부끄러움이라는 느낌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죄와 부끄러움의 연관성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부끄러움은 두려운 마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죄는 두려움을, 두려움은 부끄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양심에 죄의식을 느끼게 한다. 이 죄의식은 인간에게 부끄러운 감정을 가지게 한다. 부끄러움의 특징은 의도적으로 남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려는 감정을 가지게 하거나, 자칫 변질되어 자랑으로 발전되고, 이는 또 남과 나 사이를 구별하여 높은 담을 쌓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유별나게 체면을 찾는다. 체면은 그만큼 자존심이 세기 때문이지만, 체면은 사실, 자신의 약점을 남으로부터 숨기려는 의도가 있고, 이는 또한 남에게 자신을 들어내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에서 온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들은 스스로 느끼는 죄의식이 많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서 괜한 자존심 타령이 심해서, 피해 의식 내지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심각한 경우를 왕왕이 볼 수 있다. 사실 죄의식이나, 자존심, 그리고 부끄러움 같은 심리적 현상으로 인해서 스스로 마음의 벽을 두껍게 쌓고, 가상의 감옥 안에서 생활하는 수 많은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양로원이나 요양소와 같은 곳에서, 이런 유와 유사한 많은 나이든 분들을 만날 수 있다. 젊어서 부터 체면에 물들었던 여성들이 노년에 요양원에서 아픈 육신을 끌고 살 뿐만 아니라, 체면이나 부끄러운 자존심으로 찌든 영 안에 갇혀서 살고 있으면서 감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옥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이 땅에서도, 체면이나 부끄러워 하는 죄의식 안에 갇혀 사는 것이 지옥 아닌가? 살아서 겪는 이런 지옥을 우리는 생지옥이라고 부른다.
이 땅의 생지옥이야 말로 지하에 있는 지옥 보다 더하면 더했지, 들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지옥이 힘든 것은, 예외 없이 주위 사람 모두를 생지옥으로 초청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이, 한국 여성들 끼리 신구 세대 간에 서로 미워하고 괴로움을 끼치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지는 근본 원인은, 거듭나지 못한 채, 자기 스스로 열쇠를 채우고 감옥 안 생활을 연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기구한 쇠사슬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우리를 올무에 붙들어 매는 자존심이나, 부끄럼을 숨기기 위한 이생의 자랑들을 버리고, 하나님 희생의 십자가 사랑을 따라야 할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 모두가 죄의식에 의한 자기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애의 쇠사슬을 끊는 자기 부인의 치열한 작업을 통해서, 예수님 십자가 길을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