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하늘이 세우는 이유?
어느 조간 신문에 이순신과 조조, 두 리더의 공통점은
판세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이라고 했다.
판세를 읽을 줄 안다는 말은 바둑으로 치면, 몇 수를 먼저 읽는다는 것이고, 이는 대적하는 상대방이 어디에 어떻게 둘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이에 대비한 전략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태 파악이 빠르고, 이에 대처하는 여러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맥을 집고 행한다는 것이다.
신이 아닌 이상,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하고 진단할 수는 없어도, 인간의 이성과 감성과 경험으로도 이를 미리 예언할 수 있는 영감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도 바람이 불고 있는 줄도 알고, 또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 것임을 아는 데, 어찌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 아들인 것을 모르는가? 하셨다.
판도를 안다는 것은, 일어날 조짐을 미리 예상하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일어난 일을 보고서도 좋다, 나쁘다는 판단만 하려고한다. 반면에 리더는 일어난 일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미래에 변화될 조짐을 예측하고 준비한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리더는 세상과 인생을 두루 읽을줄 아는 지혜와 덕을 두루 지니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 무엇이 리더를 만드는 것일까?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물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가면, 한낯 가치 없는 사물에 지나지 않지만, “왜?”라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은 관계성을 이루는 것이고, 사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 창조주의 입장을 가지게 된다. 이를 ‘주인의식’이라고 한다.
이렇듯 사물과 살아 있는 소통을 하게 되면서,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생생한 지식과 자료를 공유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해서 앞을 바라 보는 안목이 조짐을 알게 하고 판도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질문하는 교육’으로 이름난 민족이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로 인해, 숫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세계를 주름 잡고 있는 원동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학습이란, 배울 학, 익힐 습,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익힌다는 깊은 의미는 몸에 익히고 배게 하여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공부를 한다 해도,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할 때에는 죽은 공부라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공부는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성을 맺으면서 관심을 가지는 가운데, ‘몰입’을 하게 한다.
리더가 갖추고 있는 여러 가지 사항들, 판세를 짜고, 조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란, 결국은 사물에 대해 몰입하고, 질문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주를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 가게 하는 것이 리더의 지혜다. 그것은 우주의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하고, 이는 우주 현상에 몰입하고, 질문하면서 자기 것으로 철저하게 의식화 하는 가운데 이루어 지게 된다.
리더는 우주의 주인의식으로 무장한 사람이고, 매사를 관심과 배려로써 남을 세워 가는 사람이다. 주인의식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지는 ‘헌신의 마음’이다. 자녀의 영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자 하는 ‘희생 정신’이 마지막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리더는 ‘유위’로 일하는 것이 아니고, 노자가 주장하는 ‘무위’로 하는 것이라 했다. 한자 위는, 할 위로 일을 하는 것인데, “리더란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진다. 리더는 있는 둥, 마는 둥 하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리더의 강한 사상과 생각, 즉 리더십이 실제 표면으로 나타나서 팔로우들의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말게 하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 이유는 리더의 의지가 밖으로 나타나게 되면, 일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구성원들의 자주적인 참여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정말 참다운 리더가 되는 것은 이렇게 힘들기만 하다. 과연 누가 스스로 이 서려운 리더의 자격을 갖추겠는가?
“리더는 하늘에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