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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인문학의 사생아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하는 명제를 던지고, 결국은 그 해답을 찾아 가는 모든 행위가, 요즈음 뜨고 있는 인문학에 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타당한 이유라고 한다. 변화하는 모든 세상 이치와 원리를 공부하고 지혜롭게 변화에 적용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했다. 

인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늘 조심스러워 했고, 인문학에 관한 화두가 될 때마다, 다시 사전을 찾는 것이 필자의 나쁜 버릇이 된 이유는, 아마도 인문학에 대한 기대가 광범위 하기도 했겠지만, 기실은 큰 기대에 걸맞는 작은 관심과 무지한 결과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자성을 해 본다. 

영어는 ‘Humanities’ 혹은 ‘Liberal Arts’ 이다.

‘인간학’이라고도 하고, 해석이 맞는지는 몰라도 ‘자유 예술’이라는 해석이다. 

달리 해석하면,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관한 학문’이고, 그것을 좀더 승화한 것이 ‘자유하는 예술’이라는 이름이 아니겠는가? 

특히 자유 예술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믿음과 순종이라는 인간 명제를 버린 후, 신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독립된 인간의 활동 영역으로의 자유라는 의미와,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예술이라는 의미로 이 이름이 사용된 것은 아닐까? 

사실 인문학의 광대역 의미는 인간이 생활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영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명제는 고대 그리스시절의 철학으로 넘어 가야 하는 것이고, 철학이 곧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생각하고 실천한 모든 자연과학과 역사, 정치와 예술 활동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철학이 신의 권위의 테두리를 벗어 나고자 하는 인간 중심의 사고와 목적에서 시작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근본 기준은 사실 ‘신 중심 사상’에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사실은 신을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 하겠다. 

결국 인문학이란, 광범위한 의미에서는 종교와 역사와 철학이 함께 어울어지 인간의 대서사시라는 진실을 받아들 수 밖에 없다. 

인문학을 통하면 우선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존재 이유의 해답과 같은 답을 얻는다. ‘나를 위하는 존재’가 인간이고, 나를 위하기 위해서는 남을 이해해야 하고, 남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하고 죽여야 하는 불합리한 타협의 합리적 포인터를 찾아야 된다는 결론에 귀결하게 된다.

나를 죽일 때에 공동의 이익이 실현되고, 또 그것이 다시 피드백 되어, 마침내 자기를 이롭게 한다는 선순환의 가르침을 깨닫게 되게 하는 모든 과정을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틀 안에 구속해 집어 넣어 놓은 것이다. 그것이 소극적으로는 인간 중심의 사상으로,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 지지만, 만물을 포함한 전 우주의 관점으로 본다면, 종교학으로 집약되게 된다.

오늘 인문학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게 된 것은 하나는 서강대학교 철학 교수(?)의 삼성전자에 가서 강의한 강연 내용과, 우연히 동영상에서 만난 조정래 작가의 인문학 강연(Who am I?)에 관한 내용을 접하고 난 뒤에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말 신문에 철학 교수의 강연 후편이 나온다니, 더욱 기대를 해 본다.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그리고 중국을 주제로 인간정글이라는 소설을 써서 작가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시는 분 중에 한 분이시다. 

이분의 언급한 내용 중에, 자신은 글의 감옥 안에서 피를 말리는 처참한 자세로, 마지막 남은 숨이 끊어진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대한다고 했고, 소설은 역사 의식을 동반할 때에만 바다로 이끄는 도도한 강물처럼 소설의 살아 꿈틀 거리는 생명을 이어가게 한다고 피력했다. 

한낯 생명 있는 소설을 쓰는 데에도 인문 철학과 역사 의식을 논해야 한다면, 진짜 인간의 영원한 생명력을 논하기 위해서, 우주를 탄생시키고, 또한 멸하게도 할 종교를 접목한다면, 이 얼마나 더 광대하고 실감나는 인생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필자의 욕심을 이야기해 본다. 

아무리 사소한 인간의 발걸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권위와 가르침을 동반한다면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위대한 인간 족적을 남기리라는 필자의 작지만 확고한 믿음을 다시 한 번 겸손히 주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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