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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사랑한 여인, 레이첼!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은 아브라함이지만, 실제 지금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원조는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이다. 그는 하나님에게 직접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라는 계시를 받았고, 실제 이스라엘 민족의 구성 부족인 열두 지파의 시조가 된 사람이었다. 

야곱은 하나님께 선택 받은 다른 부족장과는 다르게, 매우 경쟁심도 강했고, 모략에도 능한 세상 사람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슨 수를 동원하더라도 기필코 이룬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인생이야 말로 인생역전의 연속이었고, 험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많은 부분들을 성공적으로 이루었지만, 그가 스스로 선택한 것 중에, 그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아마도 그가 사랑한 여인과의 결혼을 포함한 부부관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녀의 이름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름인 ‘레이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으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사랑하지 않은 첫째 부인인 레아와는 흔하게 얻은 자식들을, 사랑하는 레이철을 통해서는 오래동안 그렇게 원했던 자식을 한 명도 임신을 하지 못했지 않았는가? 

그리고 결국은 레이첼이 어렵사리 낳은 첫째 아들인 요셉은 들짐승에게 먹혔다고 믿었고(레이첼은 이후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만나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하직한다), 두 번째 아들인 베냐민을 낳다가 그만 객사를 하게 되면서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 이름을 ‘베노니’, 즉 ‘내 고통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부부쳤겠는가? 야곱은 즉시 그 이름을 베노니에서 ‘하나님 오른 손의 아들’의 의미를 가진 ‘베냐민’으로 개명한 것 아닌가? 이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예표한다고 한다. 

야곱은 이렇 듯, 사랑하는 여인 레이첼과는 한 많은 고통의 시간을 가졌을 뿐이었지만, 반면에 사랑도 하지 않았던, 인생의 덤으로 짐을 지게 된 레이첼의 언니인 첫째 부인 레아는, 자신의 부족한 미모를 하나님께 한탄 하며서 까지 자식의 축복을 받기를 원했고, 그녀는 원 없이 자식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야곱의 입장에서는 레이첼이 선택이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야곱 자신의 선악과에 따른 인간적인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는 상징성이 있다. 즉 천연적으로 선택한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선택은 레이첼이 아니라, 그의 첫째 부인 레아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비록 인간적인 모습은 추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여섯 자식을 통해서 아부라함에게 나린 자손의 축복을 받게 되고, 그녀가 낳은 후손 중에서 구세주이신 예수가 태어나는 가문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는 긴 이야기이다. 

우리 성도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 예수를 표현하는 것이고, 이는 개인적인 타고난 천연적인 성격과 정욕, 그리고 타고난 생명을 대가로 지불 되어 져야한다. 야곱은 자기의 타고난 선택과 모든 성품으로 인해 일생동안 그 대가를 지불하느라고, 실로 고통 속에서 산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긴 각고의 인생 여정을 통하여, 자기가 사랑했던 레이첼을 보냄으로 해서 야곱이 이스라엘로의 축복을 받게 되고, 잃어 버렸던 그리스도 예수의 예표인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을 얻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기둥 이었던 열두 지파의 시조가 된 것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두 가지 선택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선텍과 하나님의 선택이고, 우리는 누구에게나 숙명적으로 그 사이에 서서 갈등하는 모순의 존재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다고 자신하는 순간에, 이미 우리는 원치 않는 우리 자신의 경륜 속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처한 한심한 현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경륜과 하나님 경륜, 둘 다를 함께 조화롭게 이끌고 가야하는 사명이 있다 하겠다.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Incarnation)하신 것이 좋은 교훈이라 하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한 인성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들이 지은 모든 죄의 짐을 받아서 홀로 십자가 길을 통해서 하늘에 오르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의 육으로 나아가야할 온전한 길을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의 몹쓸 육을 십자가 제물로 받고 싶어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육의 경륜과 선택을 모아서 온전한 산제사를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자아의 경륜을 바탕으로 해서 하나님의 경륜으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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