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society

우리 인생에 두는 악수!

원래 악수는 유럽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손에 당신을 해할 도구가 쥐여져 있지 않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증명하는 것으로, 적과의 동침인 상황에서 적의를 숨기는 수단으로도 악용되기도 했다고 하니, 당시 살벌한 시대 상황을 엿 볼 수 있는 에피소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 가까운 사람하고는 악수를 청하지 않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하는 어림 짐작도 해 본다. 경계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는 구태여 손을 내어  밀면서 무기 지니고 있지 않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유럽에서는 지기끼리는 악수를 안하는 편이다. 오히려 서로 껴 안고, 뺨에다 가벼운 비주(키스)를 몇 번씩 한다. 

현대에 와서는 악수가 일상적인 예의로 정착되어서 우의를 표시하는 전 세계의 공통 언어가 되어 버린 감이 없지 않다. 악수라는 단순한 행위를 들어서도 현대 사회의 특수 상황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행히 여기에 악수에 대한 탁월한 패러디가 있어서, 그림을 공유해 본다. 

“세상에 엉터리 인생들이 많으니, 아무도 믿지 말라”는 패러디다. 

이 얼마나 탁월한 메시지 인가? 그리고 악수하는 두 손 뒤에는 서로가 서로를 겨누고 있는 총구가 있고, 또 흑백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는 인간상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요즈음 같이 서로 적의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사는 시대적 사회도 없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그만큼 현대 사회를 사는 게 힘들어 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주위에 널려 있는 것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환장한 사람들이 처처에 넘치다 못해서, 매일 들려 오는 사건 소식이 끊이지 않고 그 오염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악수가 일상이 되어 버린 현대 사회야 말로, 병든 사회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주위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이 모두가 다 적으로의 관계를 먼저 설정해야 하기에, 악수가 보편화 되는 사회가 되었다는 해석을 해본다. 

지금 이 시대는 그야말로 열국의 전쟁 시대인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요, 웨스턴 서부 활극 시대에 서로 총질하면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살벌한 현실 사회란 것을 상기하고 조심성 있는 처신을 강요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불행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 시대적 사조가 가장 빈번하게 들락 날락하는 곳이 이 곳 대한민국이 아닌가? 성경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에게 주는 하나님의 경고 중에 뜨겁지도, 차지도 않는 미지근한 교회에 주는 책망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영토에 사는 백성들은 적어도 이런 가혹한 책망에서는 벗어나 있으리라는 짐작도 해 본다. 세계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뜨거운 인생 역전 스토리를 쉬지 않고 양산 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과연 대한민국 이라는 배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얼마전에는 중국 이라는 이웃 대국의 시진핑 주석이 왔고, 또 이어서 세계 6-70%의 세계 인구를 가졌다는 천주교 교황이 오늘 이 시간 바로 옆, 광화문에서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서울에서 인접한 임진강 바로 저 편에서는 김정은이가 이를 기념이라도 하듯, 호시탐탐 악수의 총구를 겨누고, 축포를 몇 발 쏘아 올리고 있는, 그야말로 혼돈의 현장을 경험하고 살고 있는 우리 백성들이다.

부디 이 모든 일련의 해프닝이 그냥 의미 없이 지나치는 행사가 되지 않고, 큰 역사적 흐름의 소중한 메시지가 되도록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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