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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라는 놈의 속성?(271)

정말 강북 종로의 정취는 이루 말로 다 표현 못 할 정도로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고, 역사의 수 많은 정다운 이야기가

있는 유수한 터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평소에 갖고 있었던, 생각을 두 분의 믿음의

대 선배의 이름으로, 그들의 깨달은 소중한 교훈을 페친이

페북에 친절하게 올려 주셨지요.

한 분은 루터였는데, 매일 수염 깎듯이 마음의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교훈이었습니다.  수염이야, 시간에 비례해서 늘 같은

장소에서, 한 번의 어김도 없이 무심하게 자라게 되지요.

아침을 깨우기라도 하듯이 남자라면, 매일 자란 수염을

정성스레 잘 깎아 줘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도

수염과 같아서 매일 수염 깎아 주듯이 죄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정말로 선 줄로 여기는 순간, 예외없이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참 모습입니다. 모두가 우리가 부족한 것이겠지만, 그 보다도

우리 안에 있는 내가 아닌 죄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살아 숨 쉬는 동안에는 죄에 대해서 새롭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절대로 한 번에 죄를 청산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순간, 이미 그는 교만의 길에 접어 들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죄는 한 번에 해결 되도록 어슬프게 조잡되게 꾸며진 장식품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직접 인간이 되어 내려

오실 이유가 전혀 없는 거지요.

아니 오히려 죄가 인간을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인간을

묶어 두기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죄의 속성은 끈질기고 지독하지요.

A. Savatier 라는 19C 불란서 신학자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하나님은 시련을 막아 주는 것으로 인간을 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련 속에서 인간이 견디도록 도와 주신다.”

이는 하나님의 온전히 단련된 인간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 것이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강한 훈련 조교인

죄를 부리는 사탄의 존재를 허락하신다는 재미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악인이나, 선한 자에게나 똑 같이 빛과 비를

나리시지만, 마찬가지로 사탄도 이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가릴 것

없이 똑 같이 죄의 씨앗을 뿌리고 다니는 것이지요.

마치 죄라는 이름의 새가 날아 다니면서 생각의 둥지 틀 곳을

찾아 다니다가, 빈틈을 보이는 사람의 생각을 틈 타서, 어김없이

사람 머리 속에 둥지를 틀 듯이 죄의 생각을 하게 하지요.

죄는 마치 책상에 앉는 미세한 먼지와 같습니다. 하루라도 털고

닦지 않으면, 햇빛이라도 비치게 되면, 뾰얗게 내려 앉아 있는 것

을 볼 수 있지요.

죄 덕분에, 우리는 알곡이 되기 위한 훈련을 톡톡히 거쳐야 합니다.

고난은 연단을, 연단은 인내를, 인내는 믿음의 소망을 있게 함이라고

하셨지요.

루터는 죄의 속성을 알게하고,

A. 사바티에씨는 죄의 시련을 통한 하나님의 우

리들을 향한 목적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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