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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紅海)를 건너가게 하는 교육!(270)

(“입장을 달리해서 보라”

어떤 사람이 산길을 가다가 네 다리를 모두 다친 여우를

보았다고 한다. 야생동물이라 다리를 다치면 사냥을 못해서

굶어 죽는다. 며칠 이후 같은 장소를 갔더니 여전히 여우가

살아있었다.

궁금해서 숨어서 기다렸다.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다.

이제 여우는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랑이가 여우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와 신기하다. 하나님이 다리

다친 여우도 저렇게 먹이시는구나”라고 감탄했다.

굳은 확신이 생긴 이 사람은 자기도 하나님이 먹여 줄 것을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도울 것을 믿고 누워만 지냈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고, 그냥 굶어 죽었다.

죽고 난후 천국에서 하나님께 항의했다. 왜 내게는 호랑이를

보내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대답했다.

”왜 너는 호랑이의 본은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우의

본을 받으려고 하니?“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새로운 돌파구가 나타난다.

장학금을 받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장학금을 주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부러워하는 관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미래는 달라지는 것이다. 편협한 사람은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수 있다. 억울함과 분노 속에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입장을 달리해서 보는 사람은 더 큰

섬김을 위해 나가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어린아이 교육에서는 너무 해석을 많이 가르치면 안 된다.

해석이란 기성세대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해석을 강하게

가르치면, 입장을 달리해서 보는 눈이 죽는다.

유대인들은 12세가 될 때까지 해석을 가르치지 않고,

그냥 “이야기”(Storytelling)만 반복적으로 전한다. 요셉,

모세, 다니엘의 이야기를 적어도 500번은 듣는다.

그러면 자기가 다니엘인지, 다니엘이 자기인지 혼돈이 일어난다.

사자 굴에 들어간 것 같은 위기를 맞는다. 해석이 이 상황을

극복케 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힘이 그를 이기게 만든다.

자신이 다니엘이 되어서 사자 굴의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창의적인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홍해 같은 장애가 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지날 수 없는 길이다.

모세의 이야기로 무장한 사람은 이전의 방법에서 답을 찾지 않고,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 길을 열어 버린다. 이것이

교육의 힘이다. 자기주장만 단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치열하게 입장을 달리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통합의 힘과 새로운 돌파력은 여기서 생기는 것이다.)

-윤용완 님-

동감하는 좋은 글입니다.

인간들은 습관적으로 수혜자의 입장에 서기를 즐겨하는

‘피해본능의식(被害本能意識)’으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입장을 바꾸고,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마음도 대개는 베푸는 자, 성공한 자의 입장에서 보다는 실패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의 입장에 서서, 이해해

주기를 배워 왔지요.

그리고 약자의 입장에 서는 것을 무슨 선한 사람의 대명사로

여기게끔, 사회에서나 교육 현장에서도 가르치고 있고, 또한

여기에 장단을 맞추어 배우고 있었지요.

특히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입장은 더욱 극명하게 수혜자의

순종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간구하는

기도에 주눅이 들어 늘 자유하지 못하고 문제에 저려서 사는

모습을 보지요.

성도들이 사회에서도 진리와 복음 전파의 적극적인 행위보다는

오히려 사회 속에서 괴리된 섬인 교회로 머물면서, 수동적

집단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를 가져봅니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는 사랑으로 만물을

다스리는 주인의 권세를 사용하게 하신 것이지요.

왕 같은 제사장의 위치를 부여 받은 것입니다. 생명 샘의

원천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명수를 온 세상 끝까지

공급해주는 복음의 공급자로, 복음 전도자로 세워져야 하겠지요.

우리는 비록 피조 된 창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창조자의

유전자를 이어 받아서 스스로 창조하는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는 Sonship 과 Kingship 그리고 Lordship을

가지고 공급하는 자, 베푸는 자의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아침에 커피 향과 같은 향기로운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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