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카페(Cross Cafe)’, ‘보헤미언 피난처(Bohemian Shelter)’!
무엇을 지향하기 위하여 이렇듯, 오랜 세월을 방황을 하고 있을 까? 무엇이 이정표도 없는 이곳을 이렇게 쉬지 않고 달려 가게 하는가? 문득 그 자리에 서서, 지금까지 달려 왔던 길을 되돌아 보게 한다.
아무리 달려간들, 어차피 넓은 세상, 내 족적으로 다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변명 한 번 들을 여유 조차 없었다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 인생 여정인가? 그래서 오늘도 이 자리에서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아닌가?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 중에도 이기로 꼽히는 페이스 북이나,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필자가 놀라워한 이유도, 세상 밖으로 무작위로 연결하는 인터넷을 통하여, 한 순간에 세상 끝에 사는 사람들과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마치 이들의 발명이 필자와 같은 어느 특정 인물을 위해 때를 맞추어 적절한 시기에 준비된 것 같이, 완벽한 출연이엇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하늘에서 거져 떨어진 떨어진 횡재라나 할까. 그러나, 이것도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한 가치 정의와도 같이, 한 때의 화려한 외출에 지나지 않았음을 요즈음 와서 진지하게 체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변화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야 할까? 그런데, 근래에 들어와서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 주에 양 이틀에 걸쳐서 소중한 주위의 손님들을 연달아 집으로 초청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는 지난 수 년동안 한 번도 집을 남에게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면서, 나름대로는 은둔이라면 은둔의 생활을 한 것도 부인할 수만은 없는 조그만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인생을 멋있게 치장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새로운 각성을 위한 준비도 아니었다. 그냥 몸이 머무는 대로, 생각이 발 딛는 대로 방치하고 던져 두었다고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굳이 이유를 찾아 좋게 표현하자면, ‘영적 생명 작업’에 집중하고자 한 것 아니겠는가.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를 구속하게 하는 모든 세상 속박으로 부터 자유하게 하는 진리의 영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감정을 내리고, 상황에 따른 상대적인 판단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하나된 진리 위에 서서 무심히 자아를 바라 보는 이러한 태도 하나 하나가 벽돌 같이 차곡 차곡 인생의 자유라는 이름의 성을 견고히 쌓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진리 위에 자유라는 아름다운 탑이 세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웃과 나누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고, 또한 하나됨의 환희를 즐거워 하며 누리는 것이리라. 이것을 우리는 ‘사랑’의 기운이라고 하자, 영광을 향한 ‘찬양’이라고 하자.
진리에 머물면, 자유하게 되고, 자유함을 나누고 함께 누리면, 사랑과 찬양이라는 열매를 따게 된다. 이 모든 것의 근본은 진리를 귀히 여기는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진리를 선포하는 복음의 의미를 영이 살아 숨쉬는 레마로 체험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행해야 하는 유일하면서도 우리들의 마지막 순례자적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견지했던 은둔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초청의 시대, 만남을 통한 대화와 소통의 시대를 도래하게 해야 한다는 사명자적 메시지를 회복해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 마련해준, 북한산 국립공원의 산자락에 위치한 ‘하나님의 집 베델’이 이제야 비로소 완성 되어지는구나, 하는 절제절명의 시점에 서 있다는 공감대를 느껴 본다. 이제 이 집은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 모이는 공동체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대화로, 자유로, 그들의 짐을 다 내려 놓게 하는 ‘십자가 카페(Cross Cafe)‘가 되어야 한다. 모든 세상의 진리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안식이 되는 ‘보헤미언 피난처(Bohemian Shelter)’가 되어야 하리라.
♡안응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