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을 유지하게 하는 믿음의 요령?(272)
신앙의 참 믿음은 무엇인가?
늘 하나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살이도 마찬가지 이지만, 새로운 변화에 목마르게
길 들여진 인간의 속성상,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금세 싫증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고자 애를 쓰기 마련이지요.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변함 없는 처음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게 하면서 살 수 있게 할까?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신 것이 아니었을까요?
요즘은 자기 자식은 물론이고,
남의 자식 바른 교육 시키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자기 자식 교육시키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것은, 자식에 대한 조건 없는 부모의 사랑을 자식이 믿고 있고,
나름대로는 그 부모의 사랑을 늘 확인하고픈 간절한 삶의
배고픔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커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기에 인간들은 늘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탕자의 집 나가는 행위를 계속적으로 반복하게
되지요.
부모와 자식 간이라면, 응당 탕자의 반복적인 모습을 통하여,
부모의 사랑 안으로 들어 오고, 또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처음
사랑의 느낌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겁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신앙 인이라 할지라도, 집을 밥 먹듯이 들락
날락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과의 첫 사랑의 감정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고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바른 믿음의 신앙
생활을 유지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신앙 인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어쩔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이요, 탕자 임을 깨닫고 늘 십자가
전에서 회개하는 마음을 반복하고, 유지하는 방법 외에는 누구도
장사가 없다는 겁니다.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그래. 오늘부터,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고쳐서 한 번만이라도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 보겠어!”라고 약속을 하고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면,
이는 정말 잘 못 된 것이겠지요.
이는, 집 나간 두째 아들 탕자의 마음이 아니라, 집을 지키며,
가문의 영광을 지키려 애쓴 큰 아들이 가졌던, 자기 자랑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변함 없는 처음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예수님
십자가 앞에 엎디어서, 감당 못 하는 예수님 보혈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르타의 믿음의 마음으로 서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씻을 수 없는 죄성과 부족함과 연약함을 다
예수님께 내어 드리고, 매일 통회하는 것 외에 우리가 스스로
설 수 있는 다른 길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만약 한다고 나서는 일이 있으면,
그것은 예외 없이 자기 자랑이요,
교만의 모습으로 달려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