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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牧會者)라는 이름의 허구성(虛構性)!(188)

목회자가 교회에서 편의상 평신도(平信徒)라는

명칭을 구별되게 사용하면서 교회에서는 교회 질서를

위해 목회자나 중직자(重職自)는 평신도와 구별 되어

져야 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그럴 듯하게 둘러 댑니다맞는 이야기 이지요.

분명히 에베소서에도 세상의 상전(上典)도 부모와 함께

그리스도를 대하듯잘 모시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

이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예수님은 상전 중에

상전이셨지만교회의 질서에 대한 이야기로진리가

아닌 어떤 내용으로도 권위를 주장하셨거나 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높아지려느냐그러면 먼저 낮은

자리에서 섬기라고 했지요예수님도 이 땅에 가장 낮은

자로 오셔서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섬기시려 십자가에

오르신 것 아니겠어요?

보통 구별하는 것에 대해서 만약 남여 차별화를 정정해

줄 때남자가 옳고 여자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사람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이라면그것은 맡은 역할이 서로 다르고

사명이 다른 것이겠지요목회자와 평신도는 마치 부부가

서로 역할을 달리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과

유사합니다.

또한 목회자가 강단 위에서 신비감으로 가장(假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만약 신비한 것이 있다면그것은

목회자 자신이 갖고 있는 특별난 카리스마(恩賜)일 수도

있지만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의 비밀을 계시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문제는 그 말씀으로 인해 목회자 자신이 우월감을 가지는

것은 말씀이 은사가 은혜로 거저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소유한 듯한 착각에서 유래 되는 것이겠지요.

오직 자랑할 것은 예수님 십자가 밖에 없다고 했고,

사람의 생각과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성령께서 인도하심으로

가르치지 못 할까?“ 두려운 마음으로 깨어 있었던 바울

사도의 고백이 새삼스럽게 크게 보이는 아침 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험난한 십자가 인간사를

지나게 한 것은 죄인의 지나야할 그 세상 고통을 대신

지시기 위한 것이고이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하실

뿐만 아니라우리가 받을 고통마저도 홀로 가지고 가신

것이라는 사실 입니다.

우리가 당할 아픔마저도 대신 가져 가셔서 우리를 고통의

올무 가운데서 구해주신 위로자로의 역할을 담당하신 것이

아니었는가?

목회자의 다른 역할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지나신 십자가의 길을 예수님과 똑 같은 긍휼과 아픔의

마음으로 지나야 하는 것이겠지요.

백성들의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대신 아파하신 그 아픔의

심정을 함께 나누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리라.

이것이 남과 다른 사명의 역할이지요십자가에는 신비는

없고 오직 고통만 있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나의

자랑으로 여기고 지고 갈 때그것은 신비의 거룩한

능력으로 옷 입을 겁니다그곳에는 신비로 가장한 거짓

된 나는 없고성령님의 흰 옷으로 단장한 하나님과 하나

된 기름 부음 받은 참 나만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사명을 맡은 것은비단 목회자만의 몫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짊어지고 갈 십자가의 몫입니다목회자라는

타이틀 자체가 목회자라는 허울에 올무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지요.

우리 각 자가 새 예루살렘의 신부로서열두지파의 모든

요소를 담당해야 하는 것이지요각 자가 자신의 말씀

성전이 건축 되어야 하고그 내재하고 있는 성전을

모시기 위한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고성전을

둘러싸고 포진한 각 열두 지파의 질서를 잡는 것이

우리 모두가 지녀야할 사명의 역할이 되어야 한답니다.

구약의 성전 제사장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요.

신약의 제사장은 하나님 말씀이신 예수님으로 건축 된

한 사람 한 사람 각 자가 제사장이 되는 것 입니다.

무릇 목회자라는 이름으로 구별 받고자하는 그 마음은

목회자를 영적으로 교만하게 하는 사탄의 올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우리 모두가 목회자의 구별 된

크리스천으로 사명감을 가지는 겁니다.

그리고 평신도의 낮아진 소박한 자세,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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