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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합리를 가장한 비합리주의’!(99)

(박사님께서도 윗글에서 주지하셨다시피 현대적 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르네 데카르트의 선험적 철학 사상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 생각을 해 봅니다마는, 당대의 시대적 사조로서의 프랑스

철학을 정립한 데카르트의 학문적 업적은 부인할 수가 없을성싶고,

대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에서 부터 근대 서양 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대전제 앞에

레젝콜라콥스키는 ‘근대 유럽 철학은 데카르트에 대한 각주’

라고 말했다지요.

근대는 무엇에서든 확실하고 단단한 토대를 요구했던 시대였고,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 내가 믿고 있는 것 등 그 어떤

것에서든 분명하고 확실한 근거를 요구하는 바탕에서 이러한

요구가 바로 근대적 합리정신이자, 데카르트의 근대 철학적

출발점이라고 귀동냥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큰 책’에서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던 시기에 끝없는

궁금증을 가지고 세분화시켜 완전히 이해하며 그 순서를 기초부터

탄탄히 해야 하는 복습은 처음부터 꼼꼼히 해야 한다는 시대의

사조에 불초는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합리주의’철학에 길을 열은 데카르트의 치적에 찬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방법적 회의, 다른 명제로 부터 논증되지 않고 스스로 명백한 명제,

즉 모든 철학의 원초적인 명제인 동시에 토대가 되는 ‘제1원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의심하여 더 이상 의심하려야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진리에 도달하자는 데카르트의 의도에

불초는 경외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학문적 사상이 농축되어 집대성 되었다고 말하는

“성찰”이라는 책을 주마간산의 자세로 읽을 수밖에 없는 소양

부족한 불초가 박사님의 높으신 고견에 감히 몇 자를 적어

보았습니다.)

ㅎㅎㅎ 친절한 설명에 알고 싶은 내용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지요. 사실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올리던 내용이

일순간 다 사라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있었답니다.

일순간, 인간도 수명을 다하는 전지와 같은 미약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데카르트가 ‘합리를 가장한 비합리주의’라는 댓글의 의도는

단순합니다. 그분의 철학적 공적은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현대 철학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입니다. 다만, 진리를 의심하는

것으로 명백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잘못 설정되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시대사조로 해서 의심조차도 허락 받지 못하던 중세 시대의

종교의 횡포에 대한 데카르트의 용기는 경외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명백한 진리가 의심이라는 일개 부분적 수단으로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 것이지요.

진리는 시대사조를 담고 있는 역사나 문화나 전통에 국한 되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 너머에 있기에 데카르트가 어떤 합당한

철학으로라도 진리 앞에 서는 한 합리적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지요.

사실 철학은 누가 뭐래도 의심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의심은 진리로 향하는 방향을 바르게 잡기 위한 보편적인

부분적 수단이 되어야 하겠지만, 단지 의심함으로서 진리

그 자체를 알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마 데카르트 자신은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후세에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확대해석한 면이 있었으리라

추정해 봅니다.

덕분에 유쾌한 시간을 가짐을 감사드립니다.

전문가가 아닌 소신의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좁은 소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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