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상처(夫婦傷處)의 근본 해결책은 함께 예수님을 만나는 것!(28)
(부부가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 같습니다.
이때 주고받은 상처를 치유할 때 배우자가 우선 용서하고 치유의
은총을 주님께 청해야겠지요. 그렇지만 용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용서를 못하고 가슴에 담아두어 다르게 표출되기도
합니다. 용서는 주님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지경이니까요.
하지만 배우자는 배우자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배우자의 말 한마디에 눈 녹듯 상처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힐링이 대세인 요즘은 상처, 용서, 치유가 키워드인
듯합니다.) -Choonsuk Oh 교수님-
배우자 간의 상처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상처 자체는 일종의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중요 하지요.
상처 뒤에 있는 하나님의 의미를 먼저 상고하는 것이
근본 문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관건입니다.
상처는 절대 상처로 풀 수 없습니다. 먼저 부부의 상처를
한 점 흠 없으신 예수님께 갖고 가서, 중보를 신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중보하시는 가운데만이 부부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가 됩니다. 이것이 부부의 심각한 상처 뒤에 숨어 있는
비밀입니다.
‘부부 간의 상처로 인해 비로소 부부가 함께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상처의 근본 해결책이 되는 것‘이지요. 결국 부부가 상처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상처가 축복임을 보게 하는 역설적인 깨달음은 믿는 성도
가정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허긴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부부 상처를 이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지요. 부부 관계란 누구도 뚜렷한 답을
제시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지요.
부부 관계를 남 말 하듯이 하는 사람치고 부부 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또한 제가 아는 통계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작정 본질을 피해 가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겠지요.
언젠가는 만나야 할 진리라면, 매도 먼저 맞는 것이 좋은 것처럼
먼저 찾아 가서 맞아 들여야겠지요.
엄연히 바로 앞에 좋은 것이 놓여 있는 데도 불구하고, 구차하게
둘러가서 지저분한 것을 찾아 나서는 그런 바보는 되지 않아야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