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우정이 아니라 근본 사랑이다!
결혼, 요즘 같이 바삐 광속으로 흘러 변화해 가는 복잡한 시대에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복잡한 주제를 구세대에 속한 철학자 니체로 부터 시작한다는 것도 색다른 감이 없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부르짖은 “신은 죽었다”는 철학사상이 과연 결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가 남긴 유품을 통해 정리된 이론이라면 아마도 그의 심오한 철학사상과 일반 생활철학은 판이하게 다른 잣대로 적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더욱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먼저 필자는 결혼은 사랑보다는 우정이라는 니이체의 주장에 한 편으로는 인정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있어서 간추린 내용을 살펴본 즉, 소통을 위한 대화라는 관점에서 이를 우정이라는 간편한 단어를 빌려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지속적인 대화가 가능할 때 결혼의 조건을 충족시킨다고 한다면, 우정이라는 막연한 표현보다는 오히려 사랑을 더 강조해야한다는 상황을 맞닥드리게 된다. 친구의 우정보다는 연인의 사랑이 지속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식은 사랑을 대신하여 우정을 우겨넣는 것이야말로 우스꽝스러운 판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디까지나 소통이 중심이지 대화도 우정도 아니다. 결국 식은 사랑으로 인한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겠는가? 식은 사랑을 우정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로 끝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아무리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백년가약을 맺은 결혼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무너져야할 숙명이 아니겠는가?
사랑이 식으면 결혼의 의미도 함께 사라져야한 다는 진실, 어쩌면 결혼의 정의도 다시 내려야할 때가 온 것 같다. 우선, 누구나 하는 조건을 전제로 하는 편리한 결혼은 진정한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조건 없는 사랑을 전제로한 결혼이야말로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지속적인 결혼을 유지하기위해 대화나 우정이라는 단어가 개입한다는 사실은 이미 결혼의 의미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지고하기 때문에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그 자체로서 지고한 결혼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랑하면 결혼한 것이고 사랑으로 이룬 결혼은 영원히 지속되게 되어 있다. 이것이 결혼의 숙명적 운명이다.
식은 사랑, 이미 끝난 결혼을 지속하기 위한 임시 방편으로 어떤 수단을 동원한다해도 그 결혼을 이어갈 도리는 없다. 이미, 그것은 진짜가 아닌 가짜 결혼이고 끝난 결혼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우정이 아니라 근본 사랑이다.
결혼에도 가짜가 있듯이 사랑에도 가짜가 있다. 진짜 사랑은 시공간을 넘어서는 조건없는 지고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죽음도 갈라 놓지 못하는 사랑,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육과 혼과 영 마저도 온전히 하나 되는 사랑이다. 육이 죽는다 해도 결코 죽지 않는 영혼이 있기에 영원히 사랑이 지속되는 이유다.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고, 그 사랑은 결혼을 능가하게 하는 사랑이기도 하다. 육의 사랑을 넘은 영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영혼육이 온전히 하나되는 사랑, 그 사랑을 그리워한다.
결국은 사랑이 본질이고 답이다. 결혼이나 우정이나 대화는 겉다리 치장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랑하면 결혼도 우정도 대화도 모두가 하나로 이르어지게 마련이다. 필자는 사이클을 타면서 시간이라는 매체를 생각해 본다.
아무리 자전거를 빠르게 달려 간다해도 지금 자전거 바퀴가 지면과 닿는 순간의 지금만 존재하지 지금까지 지나간 행적이나 또 다다를 종착지에 대한 의미는 없다.
과거는 지금의 흔적이고 미래는 지금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지점에 불과하다. 결국 현재만 존재하니 시간의 흐름은 없고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본질이기에 결혼도 우정도 사랑 외에는 모두가 사랑을 장식하는 악세사리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사랑이 위대한 이유다. 오직 사랑만 구하면 만사형통이다. 우리 모두 사랑이라는 큰 바다로 뛰어 들어가자구나.
♡도천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