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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때처럼 인생을 살라!

[하루라도 착한 것을 생각지 않으면 모든 악한 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법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때건 두 개의 동시성의 과정이 있다.

하나는 신에게로 향하는 것이요, 다른 것은 마귀에게 향하는 것이다.

착한 것이면 작다 해서 아니 하지 말고, 악한 것이면 작더라도 하지

말라. 악은 즐거움 속에서도 고통을 주지만, 덕은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위로해 준다.

미덕과 악덕사이에는 결코 한 순간의 휴전도 없다.

선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투자이다. 선은 지식이요,

악은 무지다. -장자(莊子)-]   -최기태 님 인용-

장자가 이런 깨달음을 가지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어느 유명 목회자가 했을 만 한 이런 말씀을 매우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설명한 내용입니다.

선과 악의 동시성(同時性), 선과 악, 그리고 미덕과 악덕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둘 중에 어느 한 면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거지요. 동전(銅錢)의 앞면을 보지 않으면 필히 뒷면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때처럼 인생을 살라”는 말이 있는 것은, “기도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가르침인 것이겠지요.

아무리 작은 선도 베풀 것은 선의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지속적으로 선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아니면 선 안에 때마다 머무는 빈도수(頻度數)가 중요할 것이라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덕(美德)과 악덕(惡德) 사이에는 휴전이 없다”는 표현도 정말 매력

있는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선(善)이 승리 한다”는

내용은 기독교적인 믿음의 의미와 매우 흡사한 사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장자적(莊子的) 표현은 이를 결코 실패하지 않는 투자라고 재미있게

사업적 개념을 빌려서 표현했네요. 마지막으로 장자는 계몽적(啓蒙的)

철학으로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됩니다. 결국 선을 지식(知識)이라 하고,

악을 무지(無知)함이라고 가르치는 것이지요.

항상 선을 생각하고 행하고 가르침을 지키는 것을 기독교에서는 진리와

생명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하고 또 끝나는 것으로 믿고 그와 늘

동행하는 것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사랑의 실천’이라는

행위로 표현하고 있고 그와 사랑으로 동행(同行)하는 한, 선으로 여겨지는

것이지요.

그는 사랑과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와 소통하고 있으며,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악을 물리치고

선을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주 안에

있으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결국 그분과 함께 최후의 승리를

누릴 수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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