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끝에 살고 있는 생명 존재와 인간의 생존 모습이 무엇이 다를까?
[(지식인의 서재-우주가 가르쳐준 겸손) -천문학자 박석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천문학 책은, 저에게 상당히 도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천문학자들이 관측하는 우주를 지구만 하게
줄이면, 지구는 그 안에서 수소원자 보다 작아요. 현미경으로도 안 보이는
거죠. 그 수소원자 속에 살면서, 지구만 한 크기의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
사람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그 넓은 우주 속에서, 알아봤자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정말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남용 님 인용-
먼지 같은 존재이지만,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존재감으로
사는 것이 또한 인간의 참 모습이자 역설의 주인공이 되겠지요.
그래서 달나라에, 금성에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있으면서
우주의 근본을 알아내고자 하고 또한 우주의 끝을 계산해
내고자 머리를 짜 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육적으로는 시공간에 갇혀서 좌표의 한 점으로만 잡히지만,
생각으로는 한 순간에 우주를 구석구석 휘젓고 다닐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모순적 존재감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지요.
1000km 의 바다 저편을 돌아서 고향으로 회귀하는 연어와
북극에서 남극까지 먹잇감을 찾아 일 년에 25.000 Km를
길 잃어버리지 않고 몸을 우주에 던지고 비행하는 북극 제비
갈매기들이 과연 우주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삶에 적용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우주 무한대의 저편 끝에 살고 있는 생명 존재와 지금 이곳
지구 한편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생존 모습이 무엇이 다를까?
북극에 사는 생물의 모습과 남극에 사는 생명의 모습이 다른
만큼만 다른 것은 아닐까?
거리에 따른 우주의 모습이 별 다르지 않듯이 생명의 존재
방식이나 모습등도 같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단지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만 우주의 모습은 천차만별 되어서 존재할
뿐이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