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 눈은 감고, 영적 눈은 뜨게!
[(예배는 자기 발견의 시간)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회개하였다(사 6:5).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직면하는 시간이고, 예배자가 하나님의
거룩을 만날 때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건은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
인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참 예배는 언제나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시작되고,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의 눈물이 흐른다.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입술이 얼마나 더러운지도 모르고 그 입으로
찬양을 드리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며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야고보의 지적처럼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함께 내면서
살았다.(약 3:10).
영적인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다.
남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보아야 하고, 거짓을 말하고, 원망과
불평을 쉬지 않으며, 남을 해하고 공격하면서 끊임없이 입술로 범죄
했던 자기의 추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남의 죄만 본다면, 그것은 신앙인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방동섭 목사님-
눈과 귀와 입이 밖으로 형성된 것을 보면, 원래 인간은 남을 먼저
의식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겠지요. 원시 사냥 시대에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진화였겠지요. 사냥감을 관찰하고 염탐하고 동물과
같은 소리를 내어서 자신을 위장하고, 보호하고 또 동물들을 위협하기
위한 것들 이었겠지요.
현대사회에 들어 와서도 자기 생존 보호 대상만 달라졌지, 여전히
빌딩 숲의 인간 사회에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변하게 된 것으로
우리의 감각 기능은 자기 보호 본능에 더욱 충실하게 진화 되게
된 것이랍니다.
모두가 육적인 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타나는 이야기 이지만,
인간이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서 외면의 세계보다 하나님이라는
절대 거룩 앞에 서서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자신의 영원한 생존에 적응하게 되는 것이었지요.
이로서 인간의 감각의 쓰임새도 바깥에서 안으로 방향전환이 일어
나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나는 것이랍니다.
[인간이 영적으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고
예배의 삶이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육적 눈은 밖으로만 보는 눈이 되겠지요.
이 눈은 내 눈 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 눈의 티끌을 나무라는
자들이겠지요. 반면에 영의 눈은 안으로만 열려 있는 눈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세우기 위한 제반 사항을 확인
하는 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따르고 죄로 이루어진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길을 추구하는 눈입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선악과로
물든 자신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로이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으로
먹고 생명수를 마시는 속사람의 속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육적 눈은 감게 하고 영적 눈은 뜨게 하는 역사가 우리에게
늘 임하는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