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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하는 길!

[(종교 대 인격)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로마서 2:28>

엄밀히 말해서 유대교와 기독교와 모조품인 회교 이외에는 다른 종교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불교에는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교는 무엇입니까? 공자의 가르침은 종교적인

것이 못 됩니다. 그것은 모두 윤리적인 교훈뿐이며 신(神)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공자는 그의 가르침 가운데 아마 신(神)을 두어 번

‘하늘’이라고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세 가지 종교가

있을 뿐이며 그것은 순수한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모방된 종교인

회교입니다. 그런데 순수한 종교라는 이 두 종교 속에도 온통 헛된

것들이 가득합니다.  

우리에게는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한 인격자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관계된 어떠한 것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인격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을 때 그 의도는, 우리에게 종교를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종교적인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 유대인들은 구약으로부터 하나의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기독교는 유대교보다 강한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유대인들보다 27권이나 되는 책을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종교가 강하면 강할수록 헛된 것들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 헛된 종교에서 저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중교 인에 머물지 않고 신앙인으로 살게 하소서!”] -김창일 목사님-

최근에 페이스 북을 통해서 국경 없는 소통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놀라움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개인의 관념의 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서 가슴을 저리게

하고 있다.

만남은 그냥 얼굴을 마주보는 시시한 일반적인 만남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우주적인 생각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 북이라는 거대 소통 수단을 이용

해서 우주적 시공간을 통한 객관적 소통을 원하기 보다는 여전히

얼굴을 마주 보고자하는 원시적 생각으로 주관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왕왕이 경험하고 있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객관적 인격이신 우주 진리에 대해서

논하고 자 함에도 불구하고, 불교 스님은 기독교를 전도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불쾌하게 여기시고, 또한 기독교 목회자님은

교단의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목이 곧은 갑의 입장을

고수하느라 여간 처신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 쪽은 예의를 찾고, 또 다른 한 쪽은 진리가 아니라 선악과

(善惡果)에 기준한 세상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고 오해와 편견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페이스 북의 인류의

유익을 위한 아름다운 소통의 수단을 오히려 서로 간의 불신의

수단으로 역이용 당하는 초유의 한심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가지게 한다.

오늘 공유한 글은 매우 소중한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만난 듯한

명쾌한 이론을 제시해 주고 있다. 우리는 종교나 국민 윤리와 같은

철학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과 또 한 사람의

신이신 하나님이라는 인격체(人格體)와의 만남을 이야기 하고 나누고

싶을 뿐이다.

표현이 하나님, 또는 예수님, 성령님으로 나타날 뿐, 절대로

기독교라는 단체적 교리를 표방하기 위한다거나 전도(傳道)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님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한 인격을 가지신 신이시지만, ‘인간의

교훈(敎訓)‘이나 ’전통(傳統)‘, 그리고 ’법(法)‘이나 ’종교형식(宗敎型式)‘

같은 부분적인 어떠한 것으로도 제약되거나 구속되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신 생명이자, 우주의 이치를 통으로 엮으신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채이고, 기독교에서 배척 받고 있는 지금의 입장이지만,

공유한 글을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았음은, 적어도 지금 추구하면서

나아가는 이 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길임을 확인했고, 또한

함께 하는 기대온의 삼백 명의 용사와 엘리아에게 이르신 숨겨 놓으신

칠천 명의 든든한 십자가 용병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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