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호기심, 고독(孤獨)!
[지금도 나는 뮌헨의 가을하면 내가 처음 도착한 해의 가을이 생각나고
그때의 심연 속을 헤매던 느낌과 모든 것이 회색이던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것에도 자신이 없었고 막막했고 완전히 고독했던 내가 겪은
뮌헨의 첫가을이 그런데도 가끔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웬일일까?
뮌헨이 그때의 나에게는 미지의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지 또는
내가 뮌헨에 대해 신선한 호기심에 넘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안개비와 유럽적 가스등과 함께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의 나의
젊은 호기심인지도 모른다. 나의 다시없이 절실했던 고독인지도 모른다.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 중에서-] -김재곤 님 인용-
작가 전혜린 씨의 첫 유럽 방문기가 어쩌면 틀림 것 하나도 없이
그리고 하나도 빠짐없이 똑 같은 이미지로 그려졌는지?
정말 신기할 뿐이다.
장소만 독일 뮌헨에서 불란서 파리로 그리고 이어서 비시(Vichy)와
그르노블(Grenoble), 툴루즈(Toulouse)로 달라지지만, 여전히 회색의
추억과 스산한 밤의 안개와 가스등의 모습은 마치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를 몽환으로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혼자
몰래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이 청춘의 호기심이었고 또한 청춘만이 가질 수 있었던
고독(孤獨)이라는 특권이었음을 이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한이 없는 심연의 골짜기에서 청춘을 태우지도
못한 채 외롭게 방황하다, 마침표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 왔다. 마침내 방황의 근원에 종지부를 찍게 한 인생의 선배인
전혜린 씨에게 나와의 인연을 다시 확인하고, 그녀가 나에게 남긴
소중한 메시지에게 미소를 가득 실어 보낸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은 이를 영원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칠십년
육 년도의 불란서의 서정(敍情)을 흑백의 수채화(水彩畵)처럼 아련한
미련으로 간직하고 있답니다. ‘육신(肉身)의 고독(孤獨)’이 무언지?
그리고 영과 육의 분별조차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미숙한
나이에 홀로 던져진 외로움에 얼마나 당황하고 살았는지?
이제 영과 육의 그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고독의 의미가 육이
아니라 ‘영적성숙을 향해 달려가게 하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와
주문‘ 이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육십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어서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영성의 퍼즐 사이사이가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뻥 뚫려 있음을 시인 하지 않을 수 없다.
육신이여 이제 나로 당신을 조용히 떠날 수 있도록 엉켜 있는
고독의 실타래를 끊어 주기를 무릎 꿇고 간절히 바랄 뿐이다.
고독이여 안녕히!
Adieu ma Solit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