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환란(患難)의 경(輕)한 것, 영광(榮光)의 중(重)한 것!

(비 오는 날, 행복한 사나이!)

인생의 비가 올 때면, 우산을 펼쳐야 한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 올 때면,

미리 우산을 준비하는 것도 인생의 산 지혜다.

인생에도 사 계절이 있고, 눈과 비가 오는 날이 있고,

바람 불거나 폭풍이 내몰아칠 때도 있다. 그래서 인생의 일기가

흐릴 때에도 참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오늘의 인생이

흐릴 때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구름이 걷히고 쾌청한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이리라.

오늘 특별히 인생의 우산에 대한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가깝게

지내는 친한 지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나와 같은 육이오 동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하동군에서

크게 포목점을 운영하다 육이오로 인해 가사를 모두 탕진한 뒤,

서울로 올라와서, 부모님의 생각대로 서울 오대문 안에 살기로

작정을 하고 적은 자본으로 할 수 있는 비닐우산 장사를 시작

했다고 한다.

일 년에 비오는 한 계절을 내내 준비하면서, 일곱 식구들은

단칸방에 함께 기거하면서 우산 장사를 위해 늘 비상사태에

돌입하여 살아야 했다. 비상사태라 하면, 비오는 날을 일컫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 있을 때에도 비가 올 상치면 수업을

마치기가 바쁘게 숨을 들이 쉬며 집으로 달려가서, 우산다발을

들고 명동입구나 단성사 주위로 달려가서 비속에서 우산을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광화문에 있는 동아 일보사까지 달려가서

석간신문을 받아서 동대문까지 한 숨에 뛰어가면서 신문을

팔았다고 한다. 신문을 다 팔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 갈 수가 없어서

길에서 저녁 늦게까지 “신문이요!” 하면서 종로 거리를 뛰었다고 했다.

거리에서 우산 팔면서 친구의 가족들을 만난 적도 있었고 또

신문을 돌리는 모습을 친구가 보고는 초등학교 학교 선생님에게

고자질해서 공부 안하고 신문 돌린다고 오질 없는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 결국은 반장 선거에서 반장으로 뽑혔는데도

불구하고 권고사직(?)을 당한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억수로 비가 오는 날에 숙명여대 부근의 가게에서

우산 백 개를 주문 받고, 을지로에서 버스를 타고 찾아서 갔지만,

가게를 찾지 못해서 빗속에 헤매다 비가 그친 뒤에 가게를 찾았다고

한다.

한 손에 백 개의 비닐우산이 포장된 짐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포장된 비닐 짐에 비를 막으면서 빗속을 헤매다,

비가 그친 뒤에 비로소 찾은 가게에 선 그 참담한 몰골은 무엇으로도

그릴 수 없는 모습이었으리라.

다행히 가게 주인이 우산을 돌려보내지 않고 대금을 지불해 줬다고

한다. 비온 뒤에 해가 나오는 것처럼, 그날의 수금한 대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을 것이리라. 그 단칸방에서 비닐우산 장사를

하면서도 오형제 중에 네 명이 서울대학을 졸업 했다고 한다.

일곱 명이 함께 기거하기에 방이 너무 좁아서 이불을 덮고

요를 깐 기억이 없다고 했고, 늘 몸을 포개어서 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한 번은 자다가 누르는 무게에 눈을 떠 보니까,

형이 자기 누운 몸 위에 책상을 깔고 공부를 했다고 했다.

자기는 삼팔선 철책 선에 있는 군대에 갔을 때, 일생 중에 가장

행복 했었다고 했다. 평생에 단독 침대에 자는 큰 행운을 얻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지금 육십 삼세의 장성한 중년이 되어서 아름다운

여생(餘生)을 가꾸고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한다.

고생은 인생을 달고 풍성한 열매로 맺게 한다.

초등학교 사학년 때인가, 여느 때처럼 비가 오는 날, 우산 열 개를

옆구리에 차고, 팔다가 일곱 개가 남았는데, 어느 청년이 다가 와서는

어린 아이가 고생을 하니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남은 우산을 회사

내 직원들에게 다 팔아 주겠다고 가져갔다.

단성사 옆 빌딩 앞에 기다리라고 하고는 한참동안 나타나지 않아

올라가 보았더니 회사 건물 뒤로 통하는 통로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에게는 이것이 최초의 네다바이 사건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구두 닦기와 신문팔이 외에는 먹고살기 위한 별다른

직업군이 없었음으로 비오는 때가 되면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우산 팔아 돈을 남기겠다고 단칸방집 앞 골목길에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때에는 온 식구가 각 자 우산을 가지고 시내를 누비고

있기에 이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우산을 도매로 팔 사람은

어머니 한 분 뿐이셨다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우산을 팔다 팔리지 않은 우산은 다시 반환되어

환불처리가 되는 데, 반환 된 재고품이 나간 모양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비에 젖고, 부품이 상한대로 들어오기 때문에 온

식구들이 동원 되어 좁은 골목길에 우산을 줄이어 펴서 말리고

수리하느라 가관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생활을 대학 졸업해서 군대 갈 때까지 계속 되었다고 하니,

그 인생의 고단함이란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직장을 은퇴하고, 부모님을 잘 모시다가 두 분

다 편안히 소천 하셨고 자식들은 다 결혼 시키고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생의 수많은 고난과 시련, 그리고 징계를 통해

무엇을 위해서 단련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냥 단순히 가난하고 지겨운 인생살이를 탈피하는 것으로만, 모든

인생살이를 보상 받았다고 자위해야 할건가? 라는 생각을 했을 때

이것은 아니다 하는 강한 부정의 마음을 가져본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사라질 인생을 위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고 단련하는 것은 아니다 하는 확신을 가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려 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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