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자식, 주운 자식!
[(무너진 탑)
공든 탑 무너지랴 믿고 싶겠지만, 모양 있는 것치고 영원한 건 없더라.
깨어지고 무너지면, 허겁지겁 모으지만, 남은 것 다시 모으면 그게 탑일까
아님 돌일까?
우리 삶에서 혹시 이런 일은 없을까요. 허겁지겁 서둘다가 망가뜨린 후
수습한다고 야단이지만 본래대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니 심사숙고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듯합니다.
<유적지에서 찍은 정도스님 사진>] -석송강 님-
[‘범소유상 개시허망’ 세상에 모양이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다는
말씀 마음에 새깁니다. 우리의 육체도 젊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노쇠하여 지수화풍으로 돌아갈 진대 우리는 영원한 것처럼 육신에 집착합니다.
영원히 가지고 갈 수 있는 마음공부에 집중을 하겠습니다.
큰스님 오늘의 법문 감사드립니다.] -문갑석 님 –
[금강경까지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견실한 신심이십니다.]
지나가지 않은 과거가 없듯이, 무너지지 않는 과거가 없지요.
과거는 무너진 공든 탑이요, 유적이 되지 않은 것이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물들어서 헤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지요.
그렇게 보면 사실 세상에 사는 모든 인연도 다 과거지사
(過去之事) 일진데, 부부다 자식이다 하면서 얼마나 많은
무너진 공든 탑을 다시 세우느라 인생 종을 치고 있습니까?
마치 나는 새가 종소리 듣기 위해 자기 머리를 종에 부딪치는
모습과 무슨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어제는 청소년이 하루에
한 명꼴로 자살을 한다고 모 방송에서 기획방송을 합디다.
어느 자살한 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죽은 자식의 영정을
떼지 못하고 자식을 때리고 학대한 다른 자식들의 부모들을
원망하면서 그들을 정죄하는 법원과 외국으로 나갈 때에도
함께 지니고 다더라고요. 얼마나 가슴이 아픈 장면이었는지요.
다 공든 탑이 무너진 터에 앉아서 넋두리를 풀어 보지만, 다시
세워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유적일 뿐이겠지요. 억울하게 죽은
자식, 품에서 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그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는 가요? 그러나 “왜, 나인가?” 하는 어머니의 절규는
무너진 공든 탑이요, 지나간 흔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삶이 각박하고 허무할 뿐이라는 절망감을 벗어버리기가 만만치가
않습니다그려.
반면에 공들이지도 않는 탑은 무너지지도 않고, 무너지는 듯하지만
다시 일어서고 일어서는 가하면 다시 무너지는 순환을 계속하고
있지요. 서해 바다에 밀물과 썰물과 같이, 우리 집 정원에 피는
온갖 잡초들은 누가 손으로 가꾸지 않아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밀려가고 또 몰려오지요.
잃은 자식이 있으면, 주운 자식도 있겠지요.
공든 자식은 잃을 수밖에 없지만, 주운 자식은 잃고 싶어도
잃을 수가 없는 큰 자연의 일부가 되는 아름다운 지혜를 이
선선한 아침에 심사숙고 하면서 가져봅니다.
[멋진 말씀 함께 합니다. 숨겨둔 얘기를 대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일들이 바로 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멋진 일요일 되십시요.]
그러셨군요.
우리 모두가 매일의 일상에서 죽은 자식을 경험하는 부모들이겠지요.
더 이상 자식을 자신만의 어리석은 공든 탑으로 쌓지 말고 모두의
공든 탑, 인류의 평강의 공든 탑, 부처님의 공든 탑으로 쌓아가야
하겠지요.
더 이상 잃어버릴 자식이 없도록 거저주운 자식마냥 모든 것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야하겠지요!
[감사한 말씀입니다. 뜻이 모이면 고쳐지겠지요.]
[천년만년 갈 것이라는 생각에 공든 탑을 만듭니다.
사람은 자신의운명도 모르는 체 천년만년동안 지속적으로 갈 것이라는
착각에 식사도 거르고 잠도 쪼개자면서 꿈을 만들지만 그것이 정녕
부질없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더욱더 사회를 혼란의 속으로 만들어
가는 듯합니다. 공든 탑 만든 사람에게는 천년만년 이지만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으니까요.] -김성도 님-
[스님. 형식과 격식 그리고 외형뿐만 아니라 마음도 한번 흐트러지면
되돌리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매일매일 몸과 마음을 적어도 어제보다는
더욱 경건히 하겠습니다.] -Jongman Yi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