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

“(물소리)

유명한 스님 한분이 토굴을 지어서 도를 닦고 계셨다. 수행자와 지인들이 자주 찾아 왔다. 스님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조용히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제일 높은 산골짜기에 칩거해 좌선을 하니 너무나 좋았다.

며칠 후 어떤 여자가 나물을 캐러 왔다가 물었다. “이 깊은 산중에 왜 혼자 와서 사십니까?” 스님이 답했다. “조용한 곳에서 공부 좀 실컷 하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되물었다. “물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여자가 가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러운가?’‘ 이 세상 어딘들 시끄럽지 않는 곳이 있겠는가?’ 산꼭대기에 숨는다고 시끄러움을 벗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있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에 있건 자신이 쉬어야 한다. 

스님은 다시 하산하여 누가 뭐라 하건 자신의 일에 정진하여 큰 스님이 되셨다.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라는 말이 평생의 스승이 되었다 하신다. 사람들은 늘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더 좋은 조건이 만들어지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탐욕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환경은 어디에도 없다. 환경이나 조건이 바뀐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가 바로 꽃자리 이다.”  -정굉식 님-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꽃자리란 말이 멋있다. 그리고 새소리 물소리 매미소리는 시끄럽지 않습니까? 하고 화두(話頭)를 던지고 간 시골 아낙이 또한 그리워진다.

인생, 참 길고 모질기도하다. 누가 인생을 여행이라고 했는가? 그래서 늘 방황하면서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알고 한 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었다. 어느 날, 늘 집으로 오르는 길로 올라오던 중에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지금 세상 끝과 시간 끝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무얼 더 하랴? 내가 어디를 가야하고, 무엇을 끝내기 위해 더 기다려야하는가? 

그 순간에 더 이상 나에게는 넓은 시공간의 감각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점으로만 존재하게 했다. ‘나는 시작과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존재를 정의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라는 말씀도 ‘나와 하나’라는 동일 존재감이 큰 밀물처럼 덮쳐왔다. 

그 순간 느끼는 단순함(Simplicity)은 모든 번뇌(煩惱)를 잊게 했고, 시작과 끝의 마지막 구슬을 꿰어서 목걸이를 완성한 것 같은 안도감(安堵感)을 가지게 했다. 마음의 평화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라면 아마 이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자문해 본다.

‘물소리’라고 하니 퍼뜩 얼마 전에 만난 작은 우연(偶然)이 생각난다. 그저께, 집에 있는 강아지를 산보시킬 겸, 아래에 있는 계곡 시내 물가 차도에 내려가서 펑퍼짐하고 앉아 있는데, 어느 

건장한 청년이 강아지를 아는 체하면서 말을 건네어 왔다.

“이 동네 물가에 있는 집들은 물소리가 시끄럽지 않습니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요. “아니요. 물소리는 좋지요. 시끄럽단 생각이 가끔은 들 수도 있겠지만, 시끄럽다고 짜증이 생기는 대신, 그 순간, 시끄러운 물소리가 시끄럽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하게 된다”고 그 청년에게 일러 주었더니, 그도 그렇다고 흔쾌히 맞장구를 치면서 유쾌한 낮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오늘도 아침에 흐리면서 하루의 찌는 더위를 예고한다. 그리고 어느 사이인가 멀리서는 산 속의 매미 소리가 해변 모래 사장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밀려 왔다가 작은 거품만 남기고 스쳐 지나간다. “스님, 어디 물소리는 시끄럽지 않나요?” 하는 옆집 아낙 소리가 유난히 반갑게 기다려지는 한가한 아침 나절이다.

♡안응 곽계달♡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