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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順從)에서 ‘불합리(不合理)한 것’과 불가능(‘不可能)한 것‘!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합리한 것’을 요구하실 수 있지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풀무 불에 걸어

들어가라고 하셨지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고 다시 나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지 그 물을

포도주로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불합리하다’, ‘불공평하다’,

‘두렵다’ 혹은 ‘하고 싶지 않다’ 같은 이유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결국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순종은 이해되지 않는 만큼 찬란합니다.] -탁영철 님-

‘불합리’란 의미는 이성과 논리에 어긋날 수 있다는 전제로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있고, 또 순종은 이성으로 계산하지

말고 말씀을 행하란 의미로 잘 이해가 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불합리한 일은 시켜도 불가능한 일 을 시키시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풀무 불에 들어가라는 명령은 우리 입장에서는

‘불합리’도 하지만, 또 ‘불가능’도 한일이랍니다. 또 물을 독에

가득 채우라는 명령은 한편으로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순종하기 어려운 주제가 안 된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의도를 몰라도 시키는 대로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문제이지요.

물로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만들 테니 물을 채우라고 했을 때에는

예수님을 돌은 분으로 여기고 불합리함으로 불순종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순종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를 던졌을 때, 뱀으로 변할 때에 뱀 꼬리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뱀 장수가 아닌 다음에야 뱀이 고개를

곧추 세우고 혀를 날름대는데 도망가기도 바쁠 텐데 감히 맨손으로

돌아가서 뱀 꼬리를 잡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사실 불가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순종은 불합리와 불가능과 관계없이 몸과 마음을 던져서 수행해야

되는 주제라는 묵상도 해 봅니다. 과연 성령님이 역사 하지 않는 한

어떤 모양이든지 간에 순종의 용기를 스스로 내지는 못할 것이

아닌가? 하는 소심한 생각을 해 본다.

순종은 원치 않아서 안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따라야하는, 불가능에도 도전해야하는 절대 명령임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종은 목숨을 내어 놓는

용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바울이나 베드로의 순교의 길과 예수님의 십자가 길은 우리로서는

절대로 감당 못 할 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진정한 순종의

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오직 우리가 나아갈 순종의

길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진심으로 의지해야겠다는 결심을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이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순종을 위한 책임을 믿습니다.

순종이 능력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민감하게 반응하여 “순종”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순간순간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제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문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허지영 님-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느낄 때 더 나아갈 수 있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 나를 조성하신분이 하나님

이시기에 순종 못할 것이 무에 있겠냐마는 역시 하나님과의 믿음이 없으면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인 거 같아요.

이삭을 주시기도 하셨지만 바치라하신 하나님, 그러나 미리 예비해주신

하나님. 순종을 드릴 때 그 안에 우린 주님과의 교제와사랑 믿음이날로

커지고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도록

이끄실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순종에 대해 또 한번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 이였습니다.] -남은아 님-

[다니엘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 6:10>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전에 하던 대로 아버지 앞에 변함없이 감사하였던

다니엘의 삶에서 묻어 나오는 몸에 익힌 믿음의 실천을 참 많이 따르고

싶습니다.

완전한 순종은 나보다는 주님을 향한 마음이 앞서 달려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이 되어 집니다. 순종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서

순종하려고 합니다.] -이금주 님-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아멘~으로 즉시로 순종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이 들어가게 되고 판단해버리는 오류가 발생하여

결국은 제대로 된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없게 되지요.

우리가 아멘으로 받아 순종하려는 그 순간 하나님은 이미 앞서가셔서

그 일의 결과를 승리로 만들어 놓으셨고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부어주셨고 이제 믿음으로 그 길을 가라 말씀 하시지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를 홀로 보내지 아니하시고 어떤 순간에도

어떤 상황에도 그분은 항상 함께 하고 계시지요.

그 안에서 순종을 배우며 나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 가시고

계시지요. 주님이 주신 마음이 확실하다면 저는 즉각적인 순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시간이 가면 거기에 내 생각을 덧붙이게 되고

그러다보면 여러 가지 불순물들이 섞이게 됩니다. 주님이 순종을

요구하실 때는 나를 통로로 쓰시겠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주님이 일하시겠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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