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님 밖에는!
인간의 불안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과 초조는 채워지지 못하는 공허(空虛)
함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까? 성경 창세기에서 살펴보면, 하나님의
천지창조로 빛이 나타나기 이전에, 혼돈(混沌)과 공허와 깊은
흑암(黑暗)상태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의도가 나타나기 이전의 상황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황과 흡사한 상황을 그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상황을 인간의 마음 밭으로 연계해서 살펴보면,
불안한 상태란 빛이 없는 혼돈과 공허한 상태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마치 배고픈 갓난아기가 엄마의 젓을 찾는 급박한 심정이라고
하겠지요. 목마른 어린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
이겠지요. 하님을 떠난 우리는 바쁜 세상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고, 어디에서 이 밤을 보낼까? 하면서 늘 불안해서
방황하며 이 땅에 살지만, 존재감을 상실한 영원한 이방인
(異邦人)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머무를 곳이 없는 이 땅의 영원한 노마드(Nomad)가 창조주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모든 화려한 문화의
본질을 뒤집어 분석해 보면, 하나님을 떠난 죄로 인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애써 감추려는 처절한 노력의 헛된 산물인 것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그토록 갈구하며 세워 놓은 바벨탑의 대표적인 문화
산물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의 금자탑(金字塔)’ 아니겠어요?
모든 인류가 평생을 공들여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짝을 찾아서 가정을 이루고 평생을 함께 해로 하는 것이겠지요.
그 긴 여정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살았겠지만, 아직 어느 한
인간도 인생의 사랑이라는 손익계정(損益計定)에서 이득을 남겼다는
자는 없다는 단정을 감히 내릴 수 있음은, 모두가 회복되지 못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혼동과 공허에서 빛으로 건질 수 있으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아무리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물에
던진다고 해도, 인간의 공허한 마음을 절대로 채울 수 없는
것이지요. 이제 방황을 끝내세요. 더 이상 어설픈 사랑
장난을 마치세요.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끊어졌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TV 드라마에서
어설픈 조연(助演)의 역할을 박차고 나와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공급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시기 바랍니다.
불안과 초조는 모두가 사탄의 ‘거짓의 영’, ‘미혹(迷惑)의
영(靈)’이 우리를 속이고 죽이기 위한 더러운 꼼수임을 알고,
하나님의 ‘진리의 영’으로 빛으로 사탄 마귀의 궤계를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復活)의
능력을 믿고 그분에게 온전히 의지하도록 해서 새로 태어나는
창조의 기쁨을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예수님 밖에는 하나님께 갈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