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선악(善惡)이 아니라, 조화(調和)와 질서(秩序)의 기준으로!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

백년을 기약하면서 달콤한 연애를 하던 때, 두 연인의 꿈은 너무나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남자는 결혼을 위해 아파트를 준비하였고

여자는 새 아파트에 맞는 세간도 알아 놓았습니다. 그렇게 희망이

부풀어 결혼 준비를 하던 때 여자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를 하여

회사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여자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아픈 고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보여 주었던 새 아파트는 사실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여자도 사실 새 아파트에 가져 갈 혼수품을 살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그 말에 그렇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렵게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남자의 월급이 결혼 전에 이야기하던 것과는 너무 작았습니다.

그래도 여자는 신혼의 맛에 기쁘게 살았습니다. 여자의 아버지도

건강을 얻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업도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하지요! 친정집이 어려울 때는 그저

있는 것에 감사 하였는데 친정집의 형편이 좋아지면서 자기의

습이 왜 그리 초라해 지는지요!결혼 전 아파트를 보여주고

그래도 경제적으로 그렇게 사랑스럽던 신랑이그렇게 미워집니다.

결국 여자는 그 속상한 마음, 억울한 마음을 친정어머니께 말씀

드렸습니다.

아픔을 이야기하는 여자의 볼에서 아픈 눈물이 흘러내리고,

이야기를 듣는 여자의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어머니, 딸에게 숨겨 놓았던 사실은 김서방이

아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는 털어 놓아야겠구나.

여자의 어머니가 해준 말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남자는 혼수 용품을 해올 형편이 못되는 여자의 마음이 상할 까

봐 아파트를 팔아 여자의 아버지의 빚을 갚는데 보태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매달 월급의 적지 않은 돈도 여자의 아버지의

병원비로 썼던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딸의 눈에서 눈물이

얼굴을 적십니다. 그 눈물은 조금 전 어머니가 흘렸던 감동의

눈물이었습니다.

실망의 눈물이 감동의 눈물로 이렇게 쉽게도 바뀔 수가 있네요.

오늘도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는

없을까요! 신발을 돌려놓아 주는 작은 배려에서부터 말입니다.

소설속의 러브스토리지만 아직도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따뜻하다는 증거 이지요!!!

사랑은 배려입니다!!!

식상한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요즘 우리 세태에 필요한 것 같아

올려 봅니다! 감동이 있는 사랑이 있는 한 주 되세요!!!

(아직도 감동의 여운이 남아 퍼왔습니다)]  -최상원 님 인용-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감동(感動) 아니겠어요?

감동은 무엇으로 그 생명(生命)을 유지할까요?

공감(共感)이지요.

공감은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배려(配慮)가 원동력(原動力)이

되어야 한답니다. 배려하는 마음은 어렵고 힘들 때,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감동과 공감과 배려는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하는 것이지요. 서로가 힘들 때 어김없이 서로가 배려하는 선물을

받게 됩니다. 인간이 존재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는 감동과

공감의 세계로 초대되는 것이랍니다.

배려의 세계는 물질을 담보(擔保)로 해서 창조되는 영적세계

(靈的世界)입니다. 육으로 살지만, 영으로 사는 우리들의 이중성

(二重性)과 같은 맥락입니다. 사라질 육(肉)을 태워서 영(靈)의

세계를 불 밝히는 것이랍니다. 육은 마치 초와 같이 자신을 태워서

주위를 밝히는 것이랍니다.

배려의 영광스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평생 감동 없이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는 육적 사람들이겠지요. 그들은 영적세계의 그

풍성(豊盛)함을 맛보지 못한 채, 상상도 못한 채 영을 방치하고

무의미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주어진 인생이라는 크로노스(Cronos: 흘러가는 시간)적

시공간(視空間)을 수동적으로 채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반면에 배려하면서 감동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한 순간을 살더라도

카이로스(Kairos: 의미 있는 시간)적 시공간을 주인 된 마음으로

창의적인 자세로 창조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겠지요.

어떻게 보면, 위에 나타난 부부의 예를 들어 보면 남편은

카이로스형 이었고 부인된 여자는 크로노스형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한 사람은 감동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고, 다른 사람은

감동을 소비해야하는 사람이지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한데

모여서 우주가 생명력을 지탱하는 것이지요. 부부는 적절한

우주의 생명의 조화를 잘 이어가게 하는 아름다운 주체입니다.

그래서 부부(夫婦) 싸움을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요.

누가 잘 했고 못했다는 선악(善惡)의 기준이 아니라,

모두가 잘한 조화(調和)와 질서(秩序)의 기준으로

만물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