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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시인해서 받고자하는 구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0)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는 히브리어 “레브”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는 우리말의 마음과 다릅니다. ‘마음'(문자적으로 “’염통”, ‘심장’)은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 곧 ‘사람의 본질적인 중심’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은 ‘결단과 의사 결정의 자리’입니다(삼하7:3; 잠16:9).

마음은 ‘생각하는 곳’이고(신29:4; 잠15:14; 마9:4; 12:34; 15:18-19),

‘사랑을 품는 장소’입니다(삿9:3; 16:15; 아4:9; 8:6). 그래서 (사사기

16:17-18)에서 마음을 알린다는 말이 ‘진정을 통한다’로 번역이 됩니다.

때론 ‘양심’을 의미하기도 하고요(삼상24:5; 대하34:27). 인격 깊은

곳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강퍅해진 마음‘이라고 합니다.(‘출4:21)

  마음은 인격의 중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고후1:22;

갈4:6)과 그리스도(엡3:17)가 거하시는 곳‘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당시 기독교에 적대적인 환경에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다른 이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문화에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죠. 즉 예수를 가장

인격의 중심에서 믿고 그분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라는 것이었죠.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2) -Min Kyu Lee님-]

-전경애 님 인용-

의에 이르기 위해 믿는 마음이란, 성경에 “계명을 생각에 두고,

마음에 새겨라“할 때의 그 마음이겠지요.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가

입으로 시인하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기독교

인들에 대한 심한 박해로 기독인들의 활동이 쉽지 않은 상태였겠지요.

당시 침체된 성도들의 용기를 북돋우고 복음 전도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한 말씀이라는 설명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크게 목청을 세워서 입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마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강요하는 교회가 부지기수

였다는 슬픈 사실을 생각을 해 볼 때에 넘치는 말씀이라고 하지만,

바른 복음을 전달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한국의 성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픈 일이지요.

[네 교수님 (목청을 세워서 입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마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강요하는 교회가…) 정확한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주세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말은 죄와 사망으로 죽을 인생이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성령께서 확증하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죠. 그러나 당시 로마의 압제 아래에서 신앙생활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면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톰 라이트 같은 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당시 구원론은 교회론과 동일하다고

보고 있죠.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황제를 더 이상 자신의

왕으로 삼지 않겠다는 말이며, 이제 나는 예수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예수의

운명과 같이 하겠다는 말이 됩니다. 오늘날 영접기도 때에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는 맥락이 확실히 차이가 나죠.]   -Ilkuk Eom 님-

[이 구절을 전인격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아도 그냥 평생에

한번이라도 입으로 고백(영접 기도문을 따라) 하면 구원 받는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꿈에서라도 한번 고백하면 구원 받는다고

이야기 하는 상황이 우려가 됩니다.]   -김홍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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