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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되는 깨달음의 이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위함은 아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신념 (What lies in you does matter)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두 개의 파도가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앞의 파도가 뒤의 파도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난 무서워 죽겠어.

해안에 도착하면 난 부서질 거고, 그렇게 되면 영영 사라질 테니까

(I am frightened because I am about to crash into the shore and

cease to exist.)” 그런데 이런 말을 듣고도 뒤의 파도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대신 앞의 파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넌 왜 무서워하는지 아니?

그건 너 스스로를 파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난 왜 안 무서워하냐고?

내가 대양의 한 부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

(You are frightened because you think you are a wave.

I am not frightened because I know I am part of the ocean.)”

이 글은 미치 앨봄이 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모리의 일화에서 대양이란 곧 광대한 우주의 은유일

것입니다. 신념의 힘이란 우주만큼 크고 위대하다는 것을 모리는 역설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또 하나의 신념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삶에 대한 신념을 잃고 작은 세계 속에 스스로를 가두려는 청년이 있습니다.

청년은 최근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스스로 부서지고 싶어 합니다.

그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금융가인 그녀의 아버지가 결단코 반대했기 때문이지요. 가난한 청년이라는 이유로! 소녀는 가족을 따라 도회지로 떠나고, 청년은 아픔을 잊으려고 전쟁터로 떠납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의 중간 부분 줄거리입니다.

‘과거의 일이 무엇이었든, 앞으로 하게 될 일이 무엇이든 정말 소중한 가치는 지금 네 가슴 속에 품은 신념, 즉 할 수 있다는 믿음(WHAT lies behind

you and what lies before you are tiny matters compared to what lies in

you)’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러곤 떠납니다. 우주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하여!]   -Kyu-hong Park 님-

불교에서 가르치는 연기론(緣起論)이 연상되는군요.

‘참된 나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랍니다.

나의 존재이유는 나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찾는다는

이론입니다. 진정한 나라는 실체는 우주와 하나 된 나에게서

찾는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쉰들러 리스트 영화에서,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우주를 구하는

것’ 이라는 명언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생명은 한없이 소중한

것이랍니다. 생영은 온 대양과 온 우주와 연결되어서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은 결국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태아가 그 어머니와 모태로 연결되어 복중에 머무는 것처럼,

우리는 우주의 문을 통해 성령 하나님의 복중(腹中)에서 사랑의

모태(母胎)로 연결되어 하나 되어 있는 것이랍니다.

우리는 빵만 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말씀으로 양육(養育)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불교는 ‘참 나’가 무엇인가? 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고

참 깨달음을 제공하는 귀한 인류의 자산입니다. ‘우주가 나를 양육하고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라는 위대한 사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주와 내가 하나 될 때 비로소 ‘참 나‘가 형성이 된다는 의미는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 승리의 선언입니다.

우리가 우주와 하나가 되었을 때, 후속적(後續的)으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열반적정(涅槃寂靜), 열반하여 스스로 만물을

누리는 것이 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대가입니다. 내가 우주가 하나가

되어 누림은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그러나 누구를 위한 깨달음일까요?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깨달음의 이치가 나를 위한 안빈낙도(安貧樂道)는

아닐 겁니다.

우리를 깨달음의 경지에 까지 인도하게 하사 우주와 하나 되게 하고,

갓난 애기가 그의 엄마를 찾는 것 같이, 우주를 창조하신 그 분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위한 무한한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하겠지요.

이는 진리와 성령 하나님의 신령한 영으로 그분께 찬양과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지요.

내가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리에 나의 교만(驕慢)

으로 앉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그분의 찬란한 영광(榮光)에 참여해서

낮아진 겸손의 덕으로써 왕다운 제사장으로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지요.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

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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