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일상(日常)의 삶의 지경(地境)을 넓히는 것!
[아침 출근길 버스 안.
머리에 롤을 잔뜩 말고 있는 여고생.
신발을 짝이 안 맞게 신었다며 연신 까르륵대는 여고생들.
약속 시간을 안 지켰다며 가벼운(?) 주먹을 주고받는 남중생들.
아침부터 애인과 수위 높은 통화를 하는 아가씨.
한국에서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조선족 아주머니들.
스마트폰으로 뉴스기사를 검색해보는 아저씨.
덥다고 투덜대는 남학생.
이게 우리가 사는 정겨운 모습입니다.
오늘도 새 하루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이광균 님-
일상의 조그마한 행복을 구별하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자기애(自己愛)‘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람에게 귀중한 세 가지 금이 있다고 했지요. ‘황금(黃金)’과
‘소금’과 ‘지금(至今)’입니다. 그 중에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한 우리의 소유된 은혜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사로잡히는 것도 장차 다가 올 미래도 모두 ‘지금’
우리가 하기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겠다. 다른 의미로는 ‘지금’을
어떻게 다루고 치리하는 가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을 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은 ‘소소한 일상의 삶’에서 비롯되고 결정된다.
지금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시간, 그 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일거수일수족을 비롯해서 모든 것들을 가장 소중한
존재의 대상으로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하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상황과 선택마저도 주저하지 말고 솔선수범하여
행함으로서 지금이라는 주어진 은혜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습관과
관습에 메인 옛사람인 나에게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떠나
보내어야 한다. ‘지금’은 도전해야하는 새로운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주(安住)하는
사람은 절대로 ‘지금’이라는 축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인간의 가치관을 성공에만 고정하는 단순하고 미련하고 편협한
인간들에게도 지금이라는 풍성한 은혜가 임하지가 않는다.
‘지금’은 우리에게 ‘변화와 도전’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넓은
시야(視野)’를 요구한다. 이것은 용서하고 포용하는 온유한
마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금을 누리는 핵심은 그 넓고,
높고, 깊은 마음에서 오기 때문이다.
인생은 진리라는 마지막 결정체를 얻기 위한 긴 여정이지만,
살아서 누구도 그 결정체를 실제로 손에 넣을 수는 없다.
‘인생은 결론이 없는 과정(過程)만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과정이란 의미는 다다르게 하지는 못하지만, 계속 자라나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인생은 성숙(成熟)함을 향해서 계속
성장(成長)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플러스의 한
쪽의 방향만 편향(偏向)되게 달려가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지금이라는 세계에서는 마이너스 영역도 적절하게
이용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인생은 결국 삶의 지경(地境)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고 본질적으로는 모든 창조의 원리에서
보여 주는 것과 같이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조화롭게 풀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공과 실패를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철학과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해야 하고 어려운 상황과
환경을 마다하고 도전할 수 있는 ‘폭넓은 인간상’을 두루 가지는
축복의 멋진 사나이로 거듭나기를 지금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바입니다.
지금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는 지금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과 소통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