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눔, 진리 앞에 세운 우리 자신의 모습!
[진정한 선(善)’은 대가가 없는 것이다.
즉 ‘누구를 위해서’라는 그 자체가 순수의지가 되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종교가 말하는 선善은 보상이 있으므로 진정한 선은
아니다.
사후의 보상이나 마음이 행복하다면, 이것은 ‘이기심의 선’이지
진정한 선은 될 수가 없다. 즉 천국을 위해서 베풀거나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진정한 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기심의 선이 이기심의 악보다는 조금
낫다는 것이다. 단 때로 지나친 이기심의 선은, 이기심의 악을 넘어선
민폐의 대악이 된다.] –자현 스님–
보상(報償)을 바라는 선(善)은 과연 선인가?
에 대한 명확한 정리를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문제로 많은 묵상을 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국 가기 위한 대가성 믿음’이 과연
하나님 뜻에 합당한 정당한 가르침인가? 하는 겁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는 “자신을 부인(否認)하라”고 가르치고 있고,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을 선한 행위로 칭찬을
하셨지요. 이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로 주신 것도 아무런 보상을 요구하는 행위가
아님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인 우리에게 보상을 바라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베푸신 사랑을 은혜(恩惠)라고 부르고 있지요.
그렇다면, 주신 말씀대로 선이란 분명히 보상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나는 주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믿는 보상인 천국 가는 문제입니다.
“과연 천국은 누가 가는 것일까요?”
천국 가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나의 에고(Ego)가 가는 것일까요?
이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왜냐하면, 에고란 이기적인 마음으로 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의 무엇이 천국에 가는 걸까요?
분명한 것은 ‘나를 부인하는 나‘가 가는 것이겠지요.
과연 나를 부인한 나의 존재는 무엇일까요? ‘내가 아닌 나‘,
‘나를 부인하는 나‘란 것은 사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죄를 짓고
에덴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으로 부여 받은 ‘신(神)의 성품(性品)’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조되었을 때 받은 원래 인간성(人間性)으로의 회복(回復)인 셈이지요.
그리고 육적인 죄성으로 심겨진 거짓된 나를 부인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합니다.
나의 에고가 천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성을 부인한 변화되어
회복된 신의 성품이 천국에 간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흔히
종교에서 떠들고 있는 보상을 요구하는 선은 성경적인 해석이 아닌 매우
잘못 된 종교관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사실 천국 가는 일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대중이 함부로 넘나드는
대중탕(大衆湯)은 아니지요. 극히 선별된 깨달음과 실천의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꿈도 꾸지 못하는 힘든 천로역정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왔을 때(마지막 날에 오시겠다고 하신 언약),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천국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하겠지요.
[기독교 성경 책 그것이 당신의 믿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기독교는 지탄받습니다. 님의 모습은 없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Dong Bal Yang 님–
악한 저의 모습을 보게 한답니다.
그게 저의 본 모습이랍니다.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부족하고 틈만 나면 남을 속이고 자존심을 살찌우고 있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제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가르치고 보여주고 역사를 합니다.
말없이 추악한 나를 보게 하는 거울입니다.
저는 지금 기독교를, 종교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앞에 세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서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추악한 모습을 누구보다도 통감하기에, 앞서 가시는 분과 함께
아름다운 나눔을 실현하는 겁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남을 감사하는 소통의 장입니다.
감사드립니다.